[사학]백제고분
- 최초 등록일
- 2006.07.17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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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고분에 대한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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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백제고분(百濟古墳)
한강 이남의 한반도 중서부 일대에는 마한(馬韓)의 70여 개 소국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그 중에 백제국(佰濟國)이라는 소국의 이름도 나온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백제가 고구려계통의 이주민이 남하하여 B.C. 1세기대에 국가를 건설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백제의 지배세력이 남하하여 왕실이 교체된 것은 4세기경이라고 보기도 한다. 지배집단의 교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백제는 이른 시기부터 마한의 한 소국으로 출발하여 주변 세력을 통합하고 중앙집권화된 고대국가로 성장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백제는 초기부터 고구려의 남하정책과 갈등을 빚어 왔으며 그로 인해 도읍을 2번이나 남쪽으로 옮기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충청과 전라지역의 마한 소국들을 통합하여 세력을 확대해 갔다. 서울 강남구 석촌동(石村洞) 일대에는 계단식돌무지무덤이 축조되어 있어 백제의 지배세력이 고구려 계통이라는 역사기록을 뒷받침해 주는데 그 하층에서는 각종 나무널(木棺) 계통의 무덤들이 발견되므로 이는 돌무지무덤이 출현하기 이전에 축조된 초기 백제 토착지배세력의 무덤으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백제 중심지의 고분과 주변 마한세력의 고분을 구분하여 보고, 제 지방의 고분문화가 결국 하나의 백제고분문화로 통합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백제의 고분문화는 마한지역의 고분문화 속에서 그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 백제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외래계 고분문화 요소, 즉 고구려계 돌무지무덤(積石塚), 남조(南朝)계 벽돌무덤(塼築墳), 그리고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 등을 채택하면서 발전하게 되는 중심지의 고분문화는 주변 마한지역의 고분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전라지역과 같은 주변지역에서는 늦은 시기까지도 지방 세력의 고분문화 전통이 유지된다. 성인을 펴서 묻을 수 있는 대형 독널무덤(甕棺墓)이나 또는 장고형, 방대형, 삼각형의 봉분 형태는 전남지방에서 특이한 발전을 보이지만 점차 굴식돌방과 같은 백제 중심지의 고분문화요소를 흡수하게 되고 점차 지역적 전통은 소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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