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한말 일제 강점기 실력양성운동
- 최초 등록일
- 2005.12.16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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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논문형식으로 된 긴 리포트구요
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의 부르주아 민족주의 우파의 실력양성론과 실력양성운동에 대한 주제로 쓴 정성이 많이 들어간 글입니다.
주로 박찬승 선생님 책을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목차
1. 서언
2. 1910년대 부르주아 민족주의운동의 분화와 실력양성론
1) 민족주의 우파의 형성
2) 1910년대 실력양성론의 전개
3. 1920~1930년대의 실력양성운동
1) 1920년대 초반의 문화운동
2) 1920년대 중반~1930년대 초반의 자치운동
4. 결어
본문내용
일제 하에서의 실력양성운동의 뿌리는 한말의 자강운동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말의 자강운동은 한국민족이 주체가 되어 교육과 실업을 진흥함으로써 문화적. 경제적 실력을 양성하고, 나아가 부국강병을 달성함으로써 장차 국권을 회복하려는 운동이었는데, 여기서부터 민족주의 우파의 민족운동논리의 발판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자강운동은 ‘선실력양성 후독립’이라는 실력양성운동론을 이론적 지주로, ‘사회진화론적 세계관’ ‘문명개화론’의 영향을 받아 신흥 자본가 계급과 일부 지주계급의 자본주의적 발전에의 지향과 일치하여 힘을 싣게 되었다. 한편 이런 논리에 매몰된 운동론으로서는 국권의 회복은 영원히 불가능하단 생각으로 ‘선독립’의 입장에 서,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것이며, 독립을 쟁취한 이후 실력양성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입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자는 이후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우파로, 후자는 부르주아 민족주의 좌파로 발전되어 나갔다.
비타협적인 민족주의에 토대를 둔 민족주의 좌파는 1910년대에는 주로 국외로 무대를 옮겨 무장투쟁을 준비하였으며, 우파의 실력양성론은 1910년대 신지식층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론화 되었다. 신지식층은 일본에서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위력에 압도되어, 한국에서도 그러한 근대 자본주의 문명을 실현함으로써 국권회복의 발판을 마련해보고자 하였다.
한편 일제는 ‘문명개화’를 표방하면서 산업개발, 민풍개선 등 각종 지배정책을 구사하며 민간자본과 노동력 동원을 꾀했고, 풍속ㆍ관습의 개량을 주도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정책은 비록 그 주체는 달리 하지만 같은 자본주의적 발전을 지향하는 한국인 실력양성론자의 입장에서도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한국인 신지식층의 실력양성운동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1910년대 실력양성론자들이 제시한 실력양성의 방법론은 ‘교육ㆍ산업의 진흥’이었다. 교육 진흥론에서는 특히 실업교육과 과학교육이 강조되었고, 이를 통해 산업을 진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이런 실력양성론은 친일파들이 내세우고 있던 실력양성론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비록 먼 훗날의 것이나마 ‘독립’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노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