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제1차 국공합작과 남경정부
- 최초 등록일
- 2005.11.17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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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열심히 했던 겁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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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1차 국공합작과 남경정부의 성립
1. 워싱턴 체제와 중국
(1) 워싱턴 회의
미국의 주도하에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에 걸쳐서 개최된 워싱턴 회의는 제1차 대전 중에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생긴 열강간의 세력 관계의 변화에 대응하여 전후의 새로운 국제 질서를 재구축하고자한 것이었다. 중국에 대해서는 독일의 패퇴, 영·불 세력의 후퇴에 대신하여 일본과 미국의 진출이 두드려졌다. 특히 러시아 혁명은 중국뿐 아니라 세계의 국제 정치에 새로운 단계가 도래하였음을 고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회의에 초청되어 참가한 것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벨기에 및 중국의 9개국이었다. 그런데 카라한 선언(1919년)에 의하여 평등의 기초에 선 중국과의 새로운 국교 수립의 의사를 이미 표명하였던 소비에트 러시아의 대표가 초청되지 않은 것은 이 회의의 성격을 잘 반영하였다. 회의의 결과 주요국의 주력함의 보유비율을 미·영 각각 5, 일 3, 불·이 각각 1.7로 하는 해군군축협정을 성립시켰고 또한 태평양의 영토의 상호불가침을 보장하는 4국 조약(미·영·불·일)을 체결하여 영일동맹은 파기되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의 주권존중·영토보전과 함께 ‘문호개방’의 원칙에 기초한 열강의 기회 균등을 약속한 9개국조약 외에 종가(從價)의 5%이내의 부가세를 인정하는 관세 협정 및 중·일 양국의 직접 교섭에 의하여 산동성의 구독일 권익에 관한 현안을 해결한다는 합의가 성립하였다. 이리하여 이후 10년에 걸친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국제 관계의 기본적 틀로서의 워싱턴 체제가 성립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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