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국공합작과 북벌
- 최초 등록일
- 2020.02.26
- 최종 저작일
- 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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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 1차 국공합작과 북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국민혁명의 개시와 국공합작의 고뇌
2. 국공합작과 국민당 개조
3. 공산당의 저항과 국민당 내부의 반발
4. 손문의 죽음과 북벌전쟁의 시작
5. 북벌전쟁의 전개와 국공합작의 파탄
6. 북벌의 마무리와 장개석의 전국통일
7. 평가
본문내용
1. 국민혁명의 개시와 국공합작의 고뇌
일반적으로 중국혁명은 1924년 1월의 국민당 제 1차 전국대표대회 전후부터 ‘국민혁명’ 시대로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왜 이시기의 혁명운동을 국민혁명으로 부르는가? 그것은 이 시기에 다음 세 가지 조건이 성숙했기 때문이다.
(1) 국민전선의 형성 (2) 국민정부 수립목표의 명확화 (3) 국민국가로서 국권회복 지향의 응축화. 물론 이러한 조건이 성숙한 기본적 배경에는 1910년대 말까지 급속하게 싹튼 근대국가 건설을 희구하는 민족주의적 국민의식의 고양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경제발전을 들지 않으면 안된다. (1) 국민전선의 형성이란 정치현상으로서는 획기적인 국공합작의 탄생이다. 그것은 인텔리혁명의 지향이 강했던 국민당 혁명의 군사투쟁우선노선과 노동자,농민에 의한 혁명운동을 조직하고 있던 공산당의 대중투쟁 우선 노선이 합류함으로서 폭넓은 국민전선을 구축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2) 국민정부의 수립이란, 국민적 이익을 돌보지 않는 군벌전쟁의 비참한 정치적 혼미를 지양하기 위해서 개명적 독재정권으로서의 ‘국민을 위한 정부’의 수립이다. (3) 독립한 국민국가로서의 국권회복이란 중국을 지배한 제국주의 열강을 타도하여 잃었던 국민주권을 회복하고 독립한 국민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즉 국민혁명이란 ‘국공합작’을 기반으로 한 반제,반군벌의 민족민주혁명이라는 것이다.그리하여 1923년 6월에 개최되었던 중국공산당 3차 전대회에서 정식으로 공산당과 국민당의 합작이 승인되었다. 이와 같이 중국의 정치무대는 국,공 양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제국주의,반군벌의 혁명 세력과 제국주의와 결탁한 세력간의 치열한 군사투쟁이 전개되는데 이를 혁명세력에서 표현한 대로 국민혁명이라 부른다.
2. 국공합작과 국민당 개조
국민당과 공산당의 연합전선이라 하는 국공합작은 국민혁명을 담당했던 1920년대의 제1차 합작과 항일전쟁을 담당했던 제2차 합작으로..
<중 략>
참고 자료
요코야마 히로아키,『中華民國史』,박종현 옮김,신서원,2000
위키피디아 <국민당의 북벌>
제 1차 국공합작과 북벌 <라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