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정리
- 최초 등록일
- 2005.04.30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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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정리
근거 자료는 신문에서 자료 발췌
목차
◆역사서의 기록
◆울릉도 어민들의 어업기지
◆제2차대전 종전 후 한국 영토임을 국제 공인
◆ 일본주장① 17세기 日 문서에 기록
◆ 일본 주장② 1905년 시마네현 '편입' 기록
◆ 일본 주장③ 2차대전후 강화조약서 인정
본문내용
◆역사서의 기록
고려사 지리지(地理誌)의 울진현 부분에는 “혹 이르기를 우산·무릉은 본래 두 섬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청명하면 바라볼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우산(于山)·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현의 정동(正東) 해중(海中)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무릉은 울릉도, 우산은 독도를 각각 가리킨다. 본래 ‘우산’은 신라시대 이래 울릉도의 이름이었지만, 조선시대 들어 울릉, 또는 무릉이라는 별도의 이름이 정착됨에 따라 점차 독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옮겨갔다. 독도는 또 ‘삼봉도’ ‘가지도’ ‘가산도’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모든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는 공도(空島) 정책에 따라 울릉도와 독도에서 주민들이 철수했다. 독도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7세기 말 일본과 영토 분쟁이 발생하면서다. 숙종 때인 1696년 여름 울릉도와 자산도(독도) 부근으로 고기 잡이를 나갔던 안용복(安龍福)이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는 동료 어부들과 이들을 몰아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어선들을 쫓아가 일본 백기주(伯耆州) 태수(太守)와 대마도주(對馬島主)와 담판을 짓조 울릉도와 자산도(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받았다. 이어 1699년 일본 막부(幕府)의 최고 책임자인 관백(關伯)이 대마도주를 통해 이를 재확인하는 외교문서를 보내옴에 따라 두 섬이 조선 영토임은 다시 한번 분명해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