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협상
- 최초 등록일
- 2005.03.24
- 최종 저작일
-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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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를 바로 알자
목차
1. 외규장각 침탈 배경
2. 협상 과정
3. 협상 과정에서의 문제점
본문내용
1781년 정조는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격인 왕실의 전적을 보관하는 두 개의 사고를 짓는다. 하나는 강화성 내 외규장각이고, 다른 하나는 강화읍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진 정족산성 내 전등사 부근에 있던 장사각과 그 별고인 선원보각이었다. 이 중 외규장각이 병인양요때 불타 없어지고, 외규장각에 있던 수많은 고서가 프랑스에 침탈당하게 된다.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대원군의 천주교도 학살 ․탄압에 대항하여 프랑스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몇 개월 사이에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을 비롯하여 남종삼(南鍾三) ․정의배(丁義培) 등 한국인 천주교도 8,000여 명을 학살하였다. 한국을 탈출한 리델 신부는, 중국 톈진[天津]에 주둔한 프랑스 인도차이나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한국에서 일어난 천주교도 학살사건을 알렸고, 10월 14일 프랑스 함정과 해병대가 강화부(江華府) 갑곶진(甲串津) 진해문(鎭海門) 부근의 고지를 점거하고 한강수로를 봉쇄하였으며, 16일 전군이 강화성을 공격하여 교전 끝에 이를 점령하고, 무기 ․서적 ․양식 등을 약탈하였다. 로스제독은 외규장각에 보관되어있던 서책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들을 이 당시 약탈하였으나 다행히 정족산성에 보관 중이던 사료들은 정족산성에서 잠복 ․대기 중인 양헌수가 이끈 500명의 사수들이 프랑스군에 대승을 거두면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로즈제독은 장교들로 구성한 위원회를 통해 약탈한 서책의 목록을 작성하게 했다. 큰 가철서(假綴書) 300권, 작은 가철서 9권, 흰색나무상자 3개 들어 있는 작은 책 31권, 지도 1점, 평면천체도 1점, 족자 7개, 한문이 적혀 있는 대리석판 3개, 투구가 붙어 있는 갑옷 3벌, 가면 1개 등이 그것이다. 실물은 고스란히 군함에 실려 프랑스로 건너갔다.
참고 자료
네이버 사전
http://www.samnangseong.org/
kbshistory
조선일보 2002.07.17
서울대학교 규장각 홈페이지
한겨레 각종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