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상의 사례와 쟁점 - 외규장각 의궤반환 -
- 최초 등록일
- 2019.09.12
- 최종 저작일
-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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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제협상의 사례와 쟁점 - 외규장각 의궤반환 -"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외규장각 의궤반환 협상 경과와 양측 입장
Ⅲ. 외규장각 의궤반환 관련 논의사항 및 쟁점
Ⅳ. 극적 타결
Ⅴ. 맺음말
본문내용
I. 머리말
외규장각 의궤는 1975년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던 박병선 박사에 의해 최초로 그 소재(베르사이유 별관 창고)가 알려졌다. 박병선 박사가 발견할 때까지 외규장각 도서는 베르사이유 (Versailles) 별관 ‘파손도서’ 서고에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었으며, 도서 분류도 ‘중국 장서(fonds chinois)’로 분류돼 있었다. 박병선 박사가 이 도서의 중요성을 도서관에 보고한 후에야 197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일반 열람이 가능해졌다.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대부분의 외규장각 도서는 어람용 의궤 도서들이었다. 의궤란 국왕, 왕비, 세자 등의 책봉, 왕실의 결혼, 능원 조성 및 이장 등 왕실과 국가에서 거행한 주요행사에 대한 준비 과정, 의식 절차 및 진행, 행사 유공자들에 대한 포상 등의 사실을 그림과 기록으로 세세하게 남긴 왕실 의례집으로서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정수다.
외규장각 의궤반환 문제의 발단은 144년 전인 1866년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병인박해)에 대한 응징을 목적으로 중국 지푸(芝罘) 주재 프랑스 동양함대의 로즈(Roze) 해군제독이 강화도를 침공하고, 강화도에 소장돼 있던 왕실용 의궤 340여책을 약탈하고 나머지 책자들은 건물과 함께 불태워버린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규장각 도서반환이 외교문제로 대두된 것은 1991년 10월 서울대학교에서 우리 외교부에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을 위한 외교교섭을 요청하면서부터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1992년 7월 25일 프랑스 정부에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공식 요청했다. 한불 양국 간 수교 이래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미테랑 대통령이 1993년 9월 14일~16일 한국을 방문했다. 방문 기간 중인 9월 14일 한불정상회담도중 ‘교류방식에 의한 영구대여’ 원칙에 합의했다. 그 다음날 미테랑 대통령은 합의에 대한 실천의 상징으로 도서 1권(『휘경원 원소도감의궤』 상하 2책 중 상책 1권)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참고 자료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 박흥신 저 | 행복에너지 | 2014.10.10.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유복렬(외무공무원) 저 | 눌와 | 2013.08.12.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문화 영웅 박병선, 조은재 글 | 김윤정 그림 | 스코프 | 2018.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