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종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22.10.09
- 최종 저작일
- 2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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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두종에 대하여"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우두종의 성립
본문내용
1. 우두종의 성립
우두종은 장강 하류의 윤주(潤州) 우두산(牛頭山)에서 선풍을 드날렸던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7)을 초조(初祖)로 하여 그의 선법을 이어간 중국선종의 한 종파이다. 기록에 따르면, 법융은 윤주 강소성(江蘇省)사람으로 성은 위(韋)씨였으며, 처음에는 유교와 도교를 배우고 군서를 깊이 연구했지만 이후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읽고 공의 이치를 깨달아 모든 학문을 등지고 모산(茅山)에 들어갔다고 한다. 거기에서 경법사(炅法師)에게 사사한 뒤 20년 간 묵좌를 하여 깨달음을 이루었으며, 유서사(幽栖寺)에 선실을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이후 그를 ‘우두산의 달인’이라 여기며 가르침을 구하고자 수백 명의 사람이 찾았는데, 특히 도신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경덕전등록(敬愛傳燈錄)』을 살펴보면,
“내가 승찬대사에게 받은 돈교법문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나니, 그대는 지금 내 말을 잘 듣고 오직 이 산에만 머물라. 앞으로 다섯 사람의 달자(達者)가 나타나서 그대의 현묘한 덕화를 계승하리라.”
도신이 법융에게 법을 부촉하면서 5명의 제자가 나타나 그의 법맥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언하는 내용이 나온다.
<중 략>
2. 우두종의 선사상
우두종에서 법융을 초조로 세우고 있는 만큼 그의 선사상은 우두종의 사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혜상(惠祥)이 지은『홍찬법화전(弘贊法華傳)』에서 법융이 삼론종의 거장인 경법사(炅法師)에게 사사(師事)하여 삼론을 비롯해『화엄(華嚴)』,『유마(維摩)』,『법화(法華)』등의 여러 경전들을 섭렵했다고 하는 것과『속고승전』의「법융전」에서
“19세 때 많은 문헌을 섭렵했고 곧 모두 독파했다. …… 또 단양의 우두산 불굴사에 머물렀는데, 거기에는 7개의 장경이 있었다. 첫 번째에는 불교의 경전, 두 번째에는 도교의 경전, 세 번째에는 불교의 역사서, 네 번째에는 일반 역사서, 다섯 번째는 의학이나 박물학 관련서적, … 곧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전 · 외전을 열람한 지 8년이 되어 중요한 것을 거의 다 메모하고는 유서사로 돌아갔다.”
라고 하듯이 당시 법융은 여러 사상들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 자료
경덕전등록 (「大正藏」권51 )
금강비론 (「大正藏」권46 )
선원제전집도서 (「大正藏」권48 )
속고승전 (「大正藏」권50 )
송고승전 (「大正藏」권50 )
신회화상유집
전당문
절관론
조당집
종경록 (「大正藏」권48 )
홍찬법화전 (「大正藏」권51 )
禪思想史= The history of Ch'an Buddhismㅣ정성본 著ㅣ선문화연구소 : 불교사상사ㅣ1993.
中國禪宗의 成立史硏究ㅣ정성본 著ㅣ민족사ㅣ2000.
중국선종사: 선사상의 탄생ㅣ인순 著, 이부키 日譯, 정유진 韓譯 ㅣ운주사ㅣ2012.
선가어록 1ㅣ혜원 譯註ㅣ운주사ㅣ2000.
초기선종사에서의 牛頭法融의 禪과 우두종에 대하여ㅣ강문선 著ㅣ《한국불교학제29집ㅣ200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