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중기의 사상사(남인과 서인의 대립)
- 최초 등록일
- 2003.12.14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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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중기의 사상사(남인과 서인의 대립)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1.시대적 배경
2.사상적 배경
별첨; 송시열의 생애
본문내용
17-18세기의 조선시대 사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에서의 유학 연구는 주로 16세기와 18세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송시열과 윤휴가 살았던 17세기는 주로 당쟁이 격화되었던 시기로 성리학의 폐해가 심하였고 그로 인한 새로운 사상이 움트는 실학의 시대를 예고하는 시대이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17세기는 조선조 5백 년 동안 내우외환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로서 대외적으로는 서구의 문물이나 제도, 천주교 등이 유입되어 교역이 활발해졌으며, 중국은 명나라의 기운이 쇠하고 청의 세력이 강해졌던 때이다. 대내적으로는 임진왜란 7년을 비롯하여 광해군의 양다리 외교의 어려움이 증대 되었고, 뒤이은 인조 반정과 이괄의 난 등 숱한 참화를 겪어야만 했던 때이다. 연이어 정묘 병자호란으로 강화도 함락과 인조가 청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수모를 겪었으며, 국론이 갈라져 갈등이 생겨났으며 2차에 걸친 예송논쟁으로 인하여 파당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민란이 자주 발생하였다.
이렇듯 그들이 살던 17세기에 조선의 정치와 경제는 피폐해졌고 가뭄이나 역병 등 자연 재해까지 겹쳐 백성들은 곤궁해져 난민과 도적떼가 횡행하니 윤리는 땅에 떨어지고 민심은 흉흉하여 나라가 어지러웠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새로운 학풍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살았던 그들은 예치확립(예로서 나라를 다스려야 함)이야 말로 시대적 사명이라 인식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