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국호의 계승과 역사인식
- 최초 등록일
- 2021.09.23
- 최종 저작일
-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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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의 국호의 계승과 역사인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고구려의 신국호 “고려”의 사료근거
1. 중국의 사료
2. 일본의 사료
3. 한국의 사료
Ⅲ. 대표 유물
1. 충주고구려비
2.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
Ⅳ. 왜곡된 국호의 사용
1. 김부식의 『삼국사기』
2. 정정의 어려움
3. 역사적 시비문제
Ⅴ. 결 론
VI. 참고 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고구려᛫ 백제᛫ 신라가 4세기에서 7세기 중엽에 걸쳐 한반도를 3분(分)하여 세력을 다투던 시대를 삼국시대라 한다. 정규 교육과정을 밟은 이들에게 삼국의 역사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가 ‘고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고려’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왕건이라는 인물부터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이 사실이 쉽게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학습한 바 있는 국사교과서 곳곳에도 고구려=고려로 통용되었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일례로 발해 무왕이 일본에게 보낸 국서에는 “나고려왕 대흠무는…”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발해가 태조 왕건의 고려 이후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의 고려는 당연히 고구려를 의미할 것이다. 현재 고구려는 중국 동북공정의 주요 대상이다. 중국 측은 고구려를 중국 민족이 세운 중국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라 주장하며, 발해 및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국호(國號)의 연결성을 찾아 민족의 뿌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고구려의 잊혀 진 이름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Ⅱ. 고구려의 신국호 “고려”의 사료근거
1. 중국의 사료
혹자는 고려가 고구려의 약칭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한 사료와 유물들이 고구려가 고려로 불리였단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고려란 국호가 처음 등장하는 중국사서는 『송서(宋書)』이다. 『송서』에서 고려란 국호의 초출(初出)은 본기 소제 경평 원년 423년(장수왕 11)이다. 송서 권 97 이남전 제 57 백제 편에서도 “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요동 동쪽 1천여 리에 있었는데, 그 후 고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점유하였다.)”라는 내용을 확인해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조경철, 「역사계승의식과 정체성의 경계 - ‘고려高麗’국호를 중심으로-」, 2012
조경철, 「한국의 나라이름과 국호계승의식 -조선, 진, 한, 고려를 중심으로- 」, 2014
정구복, 『高句麗의 ‘高麗’ 國號에 대한 一考—三國史記의 기록과 관련하여』, 호서사학,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