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20.09.10
- 최종 저작일
- 2003.04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1. 광화문 주변 둘러보기
2. 흥례문을 지나 영제교를 건너
3. 근정전-왕실 권위의 상징
4. 학문의 전당 - 수정전
5. 용이 노니는 연못, 경회루
6. 사정전- 생각하는 임금의 자리
7. 용이 잠드는 곳, 강녕전. 왕비의 침전, 교태전
8. 꽃담이 감싸 안는 자경전
9. 취향교를 건너 향원정으로
10. 건청궁의 부끄러운 역사
11. 소감- 경복궁을 나서며
본문내용
- 궁궐의 정의
궁궐이란 궁(宮)과 궐(闕)이 합쳐진 말이다. 천자나 제왕, 왕족들이 가득 모여 사는 규모가 크고 웅장한 건물이 궁이라면, 출입문 좌우에 설치하였던 망루를 지칭하는 말이 궐이다. 경복궁에서 보자면 외성으로 둘러싸인 부분이 궐이고 흥례문 안이 궁인 셈이다.
- 경복궁 개요
경복궁은 태조 4년(1395)에 창건된 조선 왕조의 정궁이다.
- 답사를 시작하며
광화문 답사를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고루함과 지루함이 묻어나오는 듯했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이 철거된 이후 처음 접한 경복궁은 웅장한 규모로 왕실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광화문 앞에 놓인 해태는 부릅뜬 두 눈으로 그릇된 나의 생각을 조용히 나무랐다.
1. 광화문 주변 둘러보기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광화문 입구에서부터 답사가 시작되었다. 광화문 밖으로 나와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문 양 옆에 있는 두 마리 해태상이다. 해태상의 사납게 찢어진 입과 그 사이로 비죽이 솟아나온 무서운 이빨도 인상적이지만 툭 불거진 두 눈알이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이것은 해태가 불기운을 막기 위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경복궁의 궁궐 배치는 남쪽으로 관악산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관악산에 화기가 있어 경복궁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해태를 세워 이를 제압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해태는 궁궐 앞에서 경복궁을 호위하는 상징물 역할도 하고 있었다. 해태를 앞으로 거느리고 궁궐에 있는 임금은 바른 정사를 펴는 성군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해태가 있는 곳부터는 성역이었고, 그 앞에서부터는 말을 타고 가다가도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해태는 원래 관악산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해태가 바라보는 것은 관악산이 아니라 남산이다. 해태뿐만 아니라 광화문도 남산 방향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하던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할 때부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