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안 사건의 교육사적 함의에 대한 비평적 정리
- 최초 등록일
- 2020.08.20
- 최종 저작일
-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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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탓은 어린아이가 하는 일이다
2-1. 해방 이후 대한반도 미군정 교육정책 기조
2-2. 고등교육개혁을 향한 오천석의 네 가지 생각
2-3. 일제 부역 엘리트와 손을 잡은 오천석]
2-4. 국대안 반대운동의 전말
3. 나오며: 성공은 준비된 것들의 합이다
본문내용
논문은 매우 단호하게, 국대안 사건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학교 사회를 말끔하게 정화시킨 사건으로, 한국 교육 모순의 근원이자 재앙의 진원지였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는 매우 극단적인 결론이며 일종의 책임 회피적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대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으며, 그런 점이 우리 교육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고,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다. 하지만 논문의 결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 교육은 지난 70년 간 전혀 발전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며, 여전히 재앙 속에 있다는 말이 된다. 정말로 우리 교육은 1940년대에 머물러 있는가? 지금까지 한국 교육 발전을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은 깡그리 무시되어도 되는가? 어린아이의 특징 중 하나가 남 탓을 하는 것인데 과거 탓을 하는 그들은 어린아이이라 그런가?
순진함은 개인이든 국가든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반대로 영악한 사람이나 국가는 상황 파악을 빠르게 하며, 대세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 흐름에 빠르게 올라탄다. 이를 선악이란 잣대로 무조건 잴 일이 아니다. 세계정세의 흐름, 정치의 세계는 그렇게 단순한 셈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 먹힌 순진한 조선의 소수가 목숨을 걸어가며 반쯤의 독립을 얻어내는 데 기여했다. 그런데 해방 당시 여전히 조선의 대부분은 순진했으며, 자주독립을 외쳤지만 그럴 만큼의 준비는 되어 있지 못했다. 소위 독립투사라는 사람들이 사분오열하며 하나가 되지 못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은 결코 조선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이 원하는 것은 세계의 패권이었고, 그것에 최대의 걸림돌인 소련을 견제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최전선에 한반도가 있었다. 그런 대세의 흐름을 어떻게 당시의 조선에 유리하게 이용하여 특히, 조선의 지성을 키워낼 수 있을지, 그래서 마침내 자주독립의 대한민국을 이룩해야 할지를 지식인들은 고민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많은 문제가 불거질 수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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