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된 문화재『북관대첩비』
- 최초 등록일
- 2020.06.02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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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반환된 문화재『북관대첩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북관대첩비 설립 배경
2. 반출 배경
3. 반환의 노력
본문내용
임진왜란(壬辰倭亂)시기에 함경도(咸鏡道) 의병들이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을 무찌른 일이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707년(숙종 34) 당시 함경도 북평사(北評事)였던 최창대(崔昌大)가 기념비를 세우는데, 그 것이 바로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 임명(臨溟)에 있는 북관대첩비이다. 높이가 약 2m, 비문이 1500자에 달하는 이 비에는 선조(宣祖)가 의주(宜州)로 피신하고 두 왕자인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이 함경도로 피난 왔던 사실과, 의병 최배천(崔配天), 지달원(池達源), 강문우(姜文佑), 이붕수(李鵬洙) 등이 북평사로 있다 산으로 피신한 정문부(鄭文孚)를 대장으로 모시고 일본군 대장 5명을 살해하는 등의 승전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 반출 배경
이후 북관대첩비는 1905년 10월 28일 러·일전쟁 때 함경지방에 진출한 일본군 제2예비사단 여단장 소장 이케다 마시스케(池田正介)의 ‘죽은 조상을 위로한다’는 명목하에 일본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로 옮겨진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