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작가론, 최서해
- 최초 등록일
- 2020.05.21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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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문학 작가론, 최서해"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체험의 소설, 빈궁의 문학
Ⅲ. 기존 연구의 문제점 분석
Ⅳ. 최서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
V. 참고 문헌
본문내용
무릇 자수성가한 인물들은 종종 그 유년 시절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이고, 그러했기에 각종 기록이나 회고에서도 그들의 뿌리는 연막에 휩싸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간 삶의 궤적 속에는 당 시대의 정신사, 나아가 우리 시대의 행로를 점치게 하는 귀중한 열쇠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최서해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서해(曙海) 최학송(崔鶴松)의 유년 시절은 그리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함경북도 출생이라는 기록도 있고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회고(回顧)한 일도 있다. 이렇듯 분명치 않은 최서해의 행적은 그가 원고 뭉치를 들고 이광수를 찾아 상경할 때까지 지속된다. 분명한 것은 그가 1901년 태어났고 함경도의 포구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지냈다는 정도이다. 부친이 한의사였던 것으로 알려졌고 또 함북 지방의 소관리를 역임했었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경성에서 태어나 어릴 적 함북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많다. 집안이 가난하기도 했고, 서자였던 최서해는 부친이 독립군이 되어 떠나자 머슴살이와 소작농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어려서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배운 것과 성진의 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이 그의 학력의 전부이다. 배움이 변변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몰라, 고전 소설과 신소설은 물론이거니와 『청춘(靑春)』,『학지광(學之光)』등의 잡지를 읽고 투고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글이 처음 게재된 것은 1918년 3월, 일본 유학 잡지인 『학지광』에 수필 세 편이 소개된 것이다. 또,『청춘』에도 산문이 당선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부분 습작기의 소박한 감상이라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지는 못하지만 그는 이 일로 상당히 고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난이라는 문제가 있었으므로 18세, 열정이 밥을 대신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가난을 면하고자 간도로 들어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는 간도에서 재혼을 하고 딸을 낳는다.
참고 자료
곽근, 『최서해 전집 상,하』,문학과지성사,1987.
상허학회, 『새로쓰는 한국작가론』, 백년글사랑, 2002.
서종택, 최서해 김유정의 세계 인식, 식민시대의 문학연구, 깊은샘
장광섭, 최서해연구 ,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이 훈, 최서해 소설론 - 가난체험과 가족애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오원규, 최서해 연구, 충북대학교
김광용, 한국현대소설사연구,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