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빙크 개혁교의학 (교의 신학의 역사와 문헌)
- 최초 등록일
- 2020.04.01
- 최종 저작일
-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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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바빙크 개혁교의학 (교의 신학의 역사와 문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교의의 형성
2. 초기 교회의 교의
3. 콘스탄티누스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까지
4. 로마 가톨릭의 교의신학
5. 루터파 교의학
6. 개혁파 교의학
본문내용
1. 교의의 형성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리의 형성이나 신학과 관련하여 교회의 전통을 과대평가하거나 또는 그와 반대로 평가절하 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교회의 전통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 사람은 아돌프 폰 하르낙(Adof von Harnack)이다. 그는 초기 교회의 교리발전을 기독교와 이교 인 그리스 철학 문화의 혼합으로 보았다. 하르낙의 하나님 나라는 그 내면에 예수의 형상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실현한 도덕적 실재다. 기독교 신학은 교의의 역사 전체를 제거한 후에, 주로 산상설교에서 발견되는 예수의 원래 복음으로 단호하고 철저하게 되돌아가야 한다. 바빙크는 이것 역시 교의 적 이라고 말한다. 바빙크에 의하면 하르낙은 교회의 교의를 자신의 것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이것에 정반대되는 과대평가는 카톨릭의 입장이다. 기독교의 진리가 성경과 전통에 완전히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도 무오 한 권위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성경을 교리에 종속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교리를 성경에 종속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에 계속해서 직면한다.
종교개혁은 역사에 대한 과소평가와 과대평가 모두를 조심했다. 종교개혁은 모든 전통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거짓되고 부패한 전통만을 반대했다. 개혁파 교회는 사도신경과 처음 네 번의 공의회가 채택한 신조들을 받아들였고, 교부들의 신학,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활용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갔고, 성경에서 흘러나오고 성경의 표준을 따르는 전통만을 인정했다.
2. 초기 교회의 교의
교리 형성의 첫 시기인 속사도 교부시대에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영향을 끼쳤다. 교회는 자신들의 교리들을 편지 형식의 글과 간단한 신조로 표현했다. 기독교 복음의 근본 요소들은 실천적인 문제들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교회는 기독교의 진리를 복음의 지배하에 살아가는 실천적 삶으로 전환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강조점이 “그노시스”(지식)이 아니라 거룩한 삶에 있었다.
참고 자료
Bavinck, Reformed Dogmatics, abrideged ed, John Bolt(편), 김찬영, 장호준,(역)『개혁파 교의학』(서울: 새물결플러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