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 분석 제갈량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20.03.10
- 최종 저작일
-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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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제갈량의 가계 관계
3. 정사로 보는 제갈량
4. 연의로 보는 제갈량
5. 제갈량의 주요 사건
6. 제갈량의 장점 및 단점
7.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중국의 유명한 시인 두보는 「촉상」이라는 시를 통해서 제갈량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애도했다.
출병하여 이기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길이 후세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이 옷깃을 가득 여미게 하네!
그만큼 제갈량은 삼국지 인물들 중에서 존경을 받고 아낌없는 칭송을 들어왔다. 『삼국연의』에 그려진 제갈량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촉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으며, 위기의 순간에 제갈량이 보여준 지혜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만큼 소설 속에 그려진 제갈량의 모습은 후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왔다.
하지만 『삼국연의』의 제갈량의 이야기 중 몇 부분은 과연 제갈량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너무 과장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제갈량이 묘책을 생각해 내기 위해서 비단주머니를 꺼내는 장면이다. 과연 제갈량은 이렇게 신비스럽고 위대한 사람일까?
이러한 의문점을 가지고 이번 보고서를 통해서 역사 속 제갈량과 연의에 나타난 제갈량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제갈량에 대한 인물 평가를 다시 정립해 보고자 한다.
2. 제갈량의 가계 관계
제갈량은 서기 181년에 서주 낭야국 양도현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공명이고 234년 54세에 죽었다.
아래 도표와 같이 제갈씨의 시조는 제갈풍으로 기록에 의하면 제갈풍은 서한시대 사람으로 제갈씨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이라고 한다. 제갈씨의 기원은 ‘제현의 갈씨’라는 명칭을 통해 시잭되었으며 그 지리적 위치는 현재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서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제갈’ 이 성이 아니고 ‘갈’씨 였으나 제갈의 조상들이 양도현으로 이동했을 때 또 다른 갈씨가 있어서 구분을 위해서 ‘제갈’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후 제갈씨는 제갈량이 태어난 낭야현 양도현에서 계속 거주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제갈풍의 자손인 제갈량의 아버지는 제갈규였으나 제갈량이 어렸을 때 부모가 모두 사망하여 숙부인 제갈현의 손에 길러지게 된다.
참고 자료
왕우(2006), 청어람, 삼국지 인물 통치학
정시구(2006), 『삼국지』에서의 제갈량의 조직혁신 리더십, 한국행정사학지 18권0호
이소영, 김진공(2004), <삼국연의> 다시 읽기(2), 한국학술진흥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