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발전과 동요
- 최초 등록일
- 2020.03.03
- 최종 저작일
- 2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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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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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신문왕
16일에 왕은 교서를 내렸다.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은 옛 성인의 좋은 규정이요, 죄진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은 선왕의 아름다운 법이다. 상중에 서울에서 반란이 일어날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반란 괴수 흠돌, 흥원, 진공 등은 능력도 없으면서 높은 지위에 올라 제 마음대로 위세를 부렸다. 흉악한 무리를 끌어 모으고 궁중 내시들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 군사를 모아 이 무도한 자들을 없애려 하였다. 어떤 자는 산골짜기로 도망가고 어떤 자는 궁궐에 와서 투항하였다. 철저히 수색하여 잔당들을 모두 잡아 죽였고 두목들도 소탕하였다. 마지못하여 취한 조치였으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니 미안한 생각이야 어찌 한시라도 잊을 수 있으랴 .
유학을 정치 이념으로 수용, 국학 설치
6두품이 유교 경전을 배우고, 국왕의 조언자 및 행정 실무 담당
<중 략>
추가
신라의 전성기 시기에 금성에는 35채의 금택을 입힌 집이 있었다.
성안에는 하나의 초가집도 없었다.
노랫소리가 길에 가득하여 밤낮을 그치지 않았다.
집을 기와로 덮고 … 밥을 숯으로 짓고 땔나무로서 하지 않는다는데
이런 일이 있는가?
재상의 집에는 녹이 슬지 않으며 노비가 3천 명, 갑옷과 무기와
소, 말, 돼지의 수가 이와 맞먹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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