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상사 레포트(송 대 관료계층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 계층의 현실인식과 경세관을 논문 2편 이상을 읽고 정리해오기)
- 최초 등록일
- 2020.01.09
- 최종 저작일
-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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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사상사 레포트(송 대 관료계층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 계층의 현실인식과 경세관을 논문 2편 이상을 읽고 정리해오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진량의 사상형성의 배경
Ⅱ. 진량의 현실인식과 경세관
Ⅲ. 진량과 주자의 왕패논쟁
1. 결과주의와 동기주의
2. 도(道)의 내재성과 초월성
3. 법규범의 안정성과 시의성, 엄격과 관용
Ⅳ. 결론
Ⅴ. 참고 자료
본문내용
Ⅰ. 진량의 사상형성의 배경
진량의 관심사는 남송(南宋)의 굴욕적 현실을 타개하는 것에 있었다. 진량은 “적에 대한 복수는 내 일생의 소망이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고토회복의 일념은 진량의 전체사상의 방향을 윤곽 짓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진량은 청소년기 때부터 고금 제왕들의 전략전술과 왕패(王覇)의 도를 탐구했다고 하였다.
나는 비루한 사람으로서, 칼과 창을 다루는 일은 익힌 바가 없고, 글을 쓰는데 능하지도 못하다. 다만 왕과 제후의 통치법의 대략과 전술의 득실에 대한 공부를 좋아하여, 얼마간 마음에 자득한 바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나간 역사에 있어서 영웅들이 이르지 못했던 점들과 또 이미 이르렀으나 앞의 사람들이 별도로 밝히지 못했던 점들을 살펴보고, 이를 논하여 저술하게 되었다. ...... 이를 작고론(酌古論)이라 명명하였다.
사실 이러한 전략이나 병법에 대한 공부는 도학(道學)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분야라 할 수 있다. 물론 진량은 그의 청년기에 도학에 대한 공부도 깊이 있게 하였지만, 그의 나이 35세 되던 1178년 효종황제에게 올린 상소에서부터 도학에 대한 서슴없는 비판을 가하게 된다. 그 이유는 正心誠意와 性命을 논하는 도학자(주자학자)들이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무기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진량은 당시의 도학자들이나 관료들을 風症에 걸려 고통과 가려움을모를 정도로 마비된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였다.
현재의 유학자들은 正心誠意의 학문을 얻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나, 모두 중풍으로 마비되어 아픔과 가려움도 모르는 사람들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임금과 아버지의 원수와 함께 이 세상을 편안한 마음으로 살면서도, 머리를 낮추고 두 손을 맞잡고서 성명(性命)을 논하고 있는데, 그들은 무엇을 성명(性命)이라 일컫는지를 모릅니다.
이와 같이, 당면한 시대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력하다고 생각한 도학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진량의 사상은 형성되었고, 1194년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도학의 주요 견해와 대립되는 자신의 입장을 전개하게 된다.
참고 자료
문병도. “陳亮의 公利主義的유가사상 연구- 動機主義와 結果主義의 대립과 관련하여-”. 『중국학보』. 제61권, 61호. (2010)
이승환. “도학파(道學派)와 사공학파(事功學派)의 공적 합리성에 관한 논쟁―주희(朱熹)와 진량(陳亮)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제28권, 28호. (2004)
강길중. “송대 관료계층의 현실인식과 경세관”. 『박이정』. pp. 355-398.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