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우리나라 행정의 주요 과제
- 최초 등록일
- 2019.05.21
- 최종 저작일
- 20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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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집회’가 벌써 20년 동안 1000회째를 맞는다.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첫 집회가 열린 이후 지난 20년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수요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차 수요집회 때부터 줄곧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피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수요집회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정작 일본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아직도 위안부 피해자들은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재~ 이번 리포트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개념, 역사, 문제 및 이에 대한 배상문제, 국제법적 책임, 정부의 해결방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일본군 위안부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군 위안소로 연행되어 강제적으로 성폭행당한 여성을 의미하며, 한국에서는 정신대라고 부른다. 정신대의 역사적 배경은 일본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늘어나는 주민 강간과 성병을 막고 군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명목 하에 ‘군위안부’제도를 만들었다. 일본군이 군 위안소를 만든 시기는 1932년경이며 본격적으로 설치한 것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1837년 말부터이다. 일본군은 위안소의 설치 목적, 관리감독위안부 동원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실행했다.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많은 여성들이 은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군위안부로 동원되었다. 특히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의 여성이 동원되었다. 끌려간 여성들의 나이는 1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광범위 했다.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이 식당종업원, 간호사, 여공 모집 등 취업사기에 속아 끌려갔으며 유괴나 강제 연행 형식으로 끌려간 경우도 많았다. 끌려간 여성들은 열악한 군위안소에서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하며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
참고 자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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