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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6세기 고구려와 신라의 대립
Ⅲ. 온달산성(溫達山城)
1. 특징
2. 전략적 가치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삼국시대의 단양(丹陽)은 교통상의 요충지로 고구려, 백제, 신라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소였다. 또한 고구려의 남진, 신라 북진의 전초기지로 여겨졌다. 그래서 단양은 삼국시대에 남쪽으로 세력을 뻗으려던 고구려와 북쪽으로 세력을 뻗으려던 신라가 마주하던 주요 싸움터였다. 그러나 온달산성(溫達山城)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 이야기 때문에 전략적인 가치나 여러 대립이 가려져 있는 것 같다.
온달전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온달산성은 교통·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역사·지리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온달산성의 특징과 이 산성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산성을 둘러싸고 어떠한 대립이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6C 고구려와 신라의 대립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이 확정된 것은 고구려 군이 소백산맥 북쪽으로 퇴각하게 되는 6세기 초이다. 신라는 상주(尙州)를 발판으로 이후 죽령(竹嶺)과 조령(鳥嶺)을 넘어 충주(忠州) 지역을 차지하였고, 진흥왕 12년(551)에는 백제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공략하였다. 6세기 중엽에는 삼국이 한강 유역의 확보를 둘러싸고 대립하게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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