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본론
1. 대청사행[연행]과 연행록
1.1. 대청사행과 연행의 정의
1.2. 연행록의 전반적인 특징과 18세기
2. 조·청 쌍방간의 상대국에 대한 인식
2.1. 조선인의 대청인식
2.1.1. 전통적 화이관과 연암일파의 화이의식
2.1.2. 통치상황에 대한 인식
2.1.3. 사회 상황에 대한 인식
2.2. 청국인의 대조선인식
Ⅲ.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머리말
한국사에서의 전통 시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군사·경제·문화적으로 가장 우월한 대국이던 중국이 황제국이 되고 주변의 여러 국가는 중국의 책봉을 받고 조공을 하는 제후국의 지위를 갖는 조공-책봉 관계를 기본으로 했는데, 조선 역시 건국과 더불어 이와 같은 국제 관계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특히, 조선과 명(明,1368~1644)·청(靑,1644~1912)과의 관계는 이전 시기와는 다른 아주 전형적인 조공관계를 성립하고 유지해왔는데, 이와 같은 체제 내에서 대중외교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 조선 사신들의 중국 사행이었다.
이들 중 조선사행원들이 청에 사행을 다녀온 후 남긴 견문록을 ‘연행록(燕行錄)’ 이라고 하는데, 연행록은 조선과 청의 전형적인 조공관계가 만들어낸 기록문헌으로서 당시 조선과 청의 교류관계 뿐만 아니라 연행을 다녀온 조선사행원들의 대청인식, 그리고 청국인의 대조선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1차 사료(史料)로서의 그 가치가 뛰어난 우리 선조들의 소중한 기록유산이라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연행록에 주목하여 조선과 청의 관계, 특히 대외관계에 있어 각 상대국에 대한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18세기에 대청사행을 다녀온 조선사행원들의 연행과 그들이 남긴 연행록을 통해서 조선사행원들, 그 중 연암일파라 일컫는 이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대청인식, 청국인들의 대조선인식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대청사행[연행]과 연행록
1.1. 대청사행과 연행의 정의
조선과 청의 초기 교류시스템, 즉 대청사행(對淸使行)은 조선이 매년 한 차례씩 세폐를 보내고, 성절(聖節), 원단(元旦), 동지(冬至) 등 3대절(大節)에 각각 한 차례씩 진공하여 1년에 모두 네 차례에 걸쳐(1年 4使) 청국을 방문하면, 청조는 이에 대해 회사(回賜)하는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조선 측의 사행은 1645년(순치順治 2)부터 동지사 일행에 합병되어, 청 말까지 동지사가 매년 파견되고 이 밖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사행이 파견되어 많은 경우 한 해에 두세 차례 이상 조선사행이 중국으로 파견되었다.
참고 자료
『조선왕조실록』 - 「영조실록」 「정조실록」
연행록(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연행록선집』
김창업, 『연행일기()』
박지원, 『열하일기』
홍대용, 『담헌서』 「연기」
이덕무, 『청장관전서』 「입연기」
김성근, 「연행록과 조선사행원의 대청인식 소고 - 연행록선집을 중심으로」, 『강원사학』 21권, 강원사학회, 2006
노대환, 「18세기 후반 연암 일파의 연행과 청조정세 인식」, 『대동문화연구』 85권,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4
최소자,정혜중,송미령 공저, 『18세기 연행록과 중국사회』, 혜안, 2007'
마크 C. 엘리엇 저, 양휘웅 역, 『건륭제』, 천지인,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