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신라의 불교 수용과정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6.12.05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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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삼국 불교의 성격
1) 전륜성왕과 정법치국
2) 업설과 윤회사상
3) 주술적 성격
3. 고구려의 불교수용과 역사적 의미
4. 신라의 불교수용과 역사적 의미
5. 고구려와 신라의 불교수용과정 비교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불교 수용 이전에 삼국의 지배계층은 지위의 정당성을 시조신이나 조상신에게서 찾았다.
지배계층이 왕과 귀족으로 분화되면서 왕은 천신의 권위를 받은 것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왕계가 바뀌고 새로운 귀족이 정치에 등장하면서 천신과 조상신의 권위를 통해 정당성을 보장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평민이나 노비의 사회적 처지를 조상신만의 권위로 포섭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왕계가 한 가문에 의해 고착화되고, 정치권력이 왕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신앙이 필요하게 되었다.
더불어 귀족의 자치권이 사라지면서 그 예속 하에 있던 부족을 하나로 통합할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새롭게 정복한 지역에 대해 민심을 통제하고 이들을 국가 구성원으로 통합할 필요성도 동시에 제기되었다.
이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 삼국에서 택한 것이 중국에서 전래 된 불교였다. 즉 삼국이 왕권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수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에서는 삼국에서 수용한 불교의 성격과 고구려와 신라의 수용 양상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2. 삼국 불교의 성격
1) 전륜성왕과 정법치국 사상
전륜성왕은 불교경전에 제시된 가장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이다.
평범한 제왕이 아니라 그의 제도 하에서 절도, 폭력 등의 사회악이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한 권리 및 정치적·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한 도덕적 지배자를 의미한다.
세계 곳곳에 펼쳐지는 그의 온화한 영향력은 전쟁과 같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을 순수하게 적용한 것에서 기인한다. 왕이 덕(德)을 갖추었다고 해서 이상적인 통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가르침인 정법(正法)을 수행하고 그에 따른 통치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륜성왕을 세간의 정법왕으로 부르는 이유이다.
불교를 받아들이는 왕들은 교설과 미륵신앙에 주목했다.
태자였던 석가가 출가하지 않았다면 전륜성왕이 되었을 것이라는 교설과 전륜성왕이 다스리는 국토에 미륵이 내려와 백성을 구제한다는 미륵신앙은 왕권의 권위를 뒷받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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