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의 난과 현종 즉위
- 최초 등록일
- 2015.12.27
- 최종 저작일
-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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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목종과 천추태후
2. 현종의 상황
3. 강조의 난과 현종 즉위
4. 강조의 죽음
5. 의의와 결과
6. 현종의 지지세력
본문내용
1. 목종과 천추태후
목종의 이름은 왕송이며 성종(제 6대)의 조카이고 경종(제 5대)의 아들이다. 경종에게는 5명의 왕후가 있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인물은 헌애왕후(천추태후)와 헌정왕후이다. 헌애왕후는 목종을 낳았고, 헌애왕후는 후에 불륜으로 현종을 낳는다. 경종 사후 목종이 유약했기 때문에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모친인 헌애황후는 허수아비 아들 대신에 섭정을 했다. 천추전에 거처했으므로 천추태후라고 불렀다. 천추태후가 섭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목종이 허약했기 때문도 맞지만, 또 목종이 극진한 효자였기 때문에 어미의 말을 거역하기 힘들었다고 볼 수 있다.
경종이 죽었을 때 천추태후는 겨우 17살이어서, 어린나이에 과부가 되었기 때문에 승려 김치양과 불륜관계에 있게 되었다. 성종인 이 불륜관계를 알고 나서 김치양을 귀양 보냈지만, 성종 사후 천추태후가 섭정에 들어가게 되자 다시 김치양을 불러 불륜관계를 지속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