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주 해방 후의 교육
- 최초 등록일
- 2015.08.16
- 최종 저작일
-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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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미군정기가 우리 교육의 역사에서 중요한 까닭은 교육이념과 학제가 그 시기에 결정되어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미군정기 교육이념과 학제와 그것이 결정되는 과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 교육이념과 학제는 친미적 성향을 가진 주도세력들로 하여금 미국을 모델로 한 교육이념과 학제를 만들어 내도록 했다. 즉 우리나라의 상활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는 학제와 교육이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교육이념에서 한국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이 채택되었으나 이는 겉만 홍익인간일 뿐, 그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의 이념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며, 새 학제도 6·3·3·4의 단선형 학제로 결정되었다.
* 복선형 학제? 실업·인문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학제
2. 미군정기의 국대안 사건은 좌익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그 시기의 부적절을 들어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정에서 국대안을 강행한 의도는 무엇일까?
⇒ 국대안은 국립 서울 대학 설립안으로 경성제국대학을 모태로 서울근교의 9개 전문학교를 합쳐 하나의 국립 종합대학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국대안의 반대 이유는 식민지 시대의 우리나라 성균관이 아닌 경성제국대학을 모체로 하였고,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국립이 가능한가에 대한 시기적 적절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정의 강행이유는 필리핀의 국립 마닐라 대학처럼 친미 엘리트 양성을 하여 우리나라를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3. 1930년대 이후 국내 교육자들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거의 대부분의 교원들이 다시 교단과 교육행정 기관을 장악하게 된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일까?
⇒ 미군정의 기본정책은 남한의 공산화방지와 친소정권의 대두저지였기 때문에 현상유지정책을 펴나갔다. 이런 정책은 교육에서도 적용되어 그 현상유지정책에 호흥하는 보수적인 집단이 한민당이었고 한민당은 대부분 친일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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