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생애와 시대별 작품
- 최초 등록일
- 2015.05.26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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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생애
2. 시대별 예술
1) 유학시절(1937~1943)
2) 북한시절(1943~1950)
3) 피란시절(1950~1956)
3. 참고문헌
본문내용
대향(大鄕, 혹은 소탑(小塔)) 이중섭은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서 면의 부농인 이창희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평원군 일대는 옛 고구려와 낙랑의 영토로 고구려의 고분과 유적인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는 후에 이중섭의 예술성과 고구려 고분벽화와의 연관성을 살피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중섭의 미술에 대한 재능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다. 노트의 빈칸에 그림을 그리거나 흙으로 얼굴을 만들기를 하는 등 그림에 관심을 보인다. 그는 서울 종로에서 공립보통학교를 다니게 되어 혼자 사색할 시간이 많았고, 이에 내성적인 성격의 이중섭은 학과 공부보다 그림에 더 매달렸다. 그로 인해 평양보통고등학교에 낙방했지만 이는 그의 인생을 바꿀 계기가 된다.평양고등보통학교 대신 오산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오산학교는 민족의식이 강한 사학이었으며 이는 이중섭이 향토적 소재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곳에서 이중섭은 미술담당 교사였던 임용련 임용련 : 1931년 3.1운동에 참여. 예일 대학 미술학과를 수석졸업. 20~30년대 그 활동이 두드러진바 있으나 해방과 동란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50년 남북 됨을 만난다. 파리에서 활동했던 임용련은 당시 대부분 작가의 유학지가 일본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드문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임용련은 습작의 중요성을 이중섭에게 강조했다. 이중섭은 이에 영향을 받아 습작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가 다수의 드로잉을 남겼던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는 임용련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 심미안과 회화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의식할 수 있었으며 서양화의 재료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회화를 그리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또한 이중섭의 유년기였던 1920년대 우리 미술계에는 우화 작가(고희동, 김관호, 김찬영, 나혜선)가 등장해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그랬기에 근대 화단의 형성 과정을 직접 몸으로 겪을 수 있었다.
참고 자료
김선숙, 이중섭 회화에 나타난 한국 전통미술의 특질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조진행, 이중섭의 생애와 작품세계, 공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