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사론 연구
- 최초 등록일
- 2014.11.14
- 최종 저작일
-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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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三國史記의 編纂 動機
2. 金富軾의 歷史認識
3. 三國史記 解題
4. 三國史記의 構成
5. 三國史記의 論贊
6. 史料批判
본문내용
1. 『三國史記』의 編纂 動機
金富軾이 『三國史記』를 편찬하기 이전에 고려 초기인 현종 원년(101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三國史』라는 책이 있었으나 현전하지 않는다. 이 책은 김부식이 『三國史記』를 편찬한 후 ‘舊’자를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1193년(명종 23) 李奎報가 『東國李相國集』의「東明王篇」을 쓰면서 자료로 삼았다는 『舊三國史』의 ‘東明王本紀’로 미루어, 그 체제는 紀傳體의 형식으로 서술되고, 說話的인 면이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金富軾은 왜 삼국사를 다시 써야 했을까. 삼국사기가 어떤 동기에서 편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자료가 없다. 金富軾은 ‘進三國史記表’에서 “지금 사대부들은 五經ㆍ諸子之書ㆍ晉漢 史書에는 널리 능통하지만 우리나라 사실에는 茫然하여 始末을 모르고 있으니 심히 탄식할 일이다. 하물며 신라ㆍ고구려ㆍ백제가 서로 정립하여 능히 禮로써 중국과 통한 바 있어 『漢書』나 『唐書』에 모두 열전에 기록된 바 있다. 그러나 중국의 것은 자세하나 3국의 것은 간략하게 써 놓았으므로 실리지 않은 것이 적지 않다. 더욱이 古記에는 문자가 거칠고 사적이 빠지고 없기 때문에 이것으로는 임금의 善惡과 신하의 忠邪, 나라의 安危, 인민의 理亂 등을 모두 드러내어 후세를 경계할 수 없게 되었다” 하여 『三國史記』의 편찬 동기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당시 學士 大夫들이 유교 경전과 중국 역사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전혀 무지한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古記는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고 내용이 소략하여 바람직한 역사적 교훈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편찬동기를 다르게 보고 있다. 유학자인 金富軾이 불교세력인 妙淸 세력을 진압한 후 유교 이론을 정립하기 위한 편찬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신채호가 주창한 이래 김철준에 의하여 계승되고 있다. 그는 『三國史記』가 사대적 사서라는 특징을 강조하여 전통적 문화유산을 부정하고 유교사관을 정립하기 위하여 편찬하였다는 설을 제기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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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哲埈, 1976. 「高麗中期의 文化意識과 史學의 性格」 『韓國의 歷史認識 (上)』, 創作과批評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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