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의 삼대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4.01.07
- 최종 저작일
- 20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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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염상섭의 생애
2. 작품의 줄거리
3. 작품의 성과와 의의
본문내용
1. 염상섭의 생애
염상섭은 1897년 8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상섭(尙燮)이고, 필명은 상섭(想涉), 호는 횡보(橫步)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근시였다. 1907년 종로 수송동에 있던 관립사범부속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이로부터 시작된 학창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보통학교를 두 번이나 옮겼고, 중학교를 네 번이나 전학해야 했으며, 대학은 예과에서 중퇴해야 했다. 관립보통학교에서는 등교 거부로 말미암아 반일 학생으로 지목되어 중퇴하였고, 1911년 입학한 보성중학교에서는 손병희, 최린, 엄주관 선생들의 가르침을 받아 민족 사상에 투철한 항일청년이 되어 갔다고 한다.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마포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으나 중도에 그만두고 성학원(聖學院)과 경도부립 제2중학을 거쳐 1918년에 게이오 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그의 일본에서의 학창 시절은 외롭고 고생스런 생활이었지만 폭 넓은 독서를 통해 문학에 눈을 뜰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값진 시기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오사카에 있었다. 염상섭은 거기에서 한국인들을 규합해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검거되어 10개월 형을 받고 5개월 간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그해 겨울에는 학교를 중퇴한 채 인쇄소 작공일을 하기도 했는데 1920년 1월 동아일보 창간과 함께 현지에서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일본에서의 기자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그해 7월 동인지 《폐허》를 창간한다. 이후 그는 오산학교 교사, 《동명》지 편집, 시대일보 사회부장 등을 전전하면서 문예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1921년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하였으며, 이어 1924년 <만세전>을 발표함으로써 그는 근대문학의 기수가 되었다. 1926년 1월 두 번째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문단 진출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실의에 빠진 여윈 몸으로 2년 만에 돌아오게 된다.
참고 자료
염상섭 저, 《염상섭 삼대》, 북앤북, 2009.
염상섭 저, 정호웅 편,《삼대》, 문학과지성사, 2004.
서울대학교 편집,《권장도서해제집》,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문학사전편집위원회 엮음,《문학사전》, 강, 1997.
최영 저,《근대 한국의 지식인과 그 사상》, 문학과지성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