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 최초 등록일
- 2003.03.13
- 최종 저작일
- 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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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중관계
중국의 대외관계
본문내용
1961년 북한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고 북한에 대한 정치, 경제적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한중관계는 일체의 접촉이 없었다. 70년대에 중국의 대미·일 접근으로 조성된 국제적인 긴장완화는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에도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동맹국인 한국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남북한간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고 이에 기초하여 남북한이 화해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도 6·23「평화통일외교정책」을 선언하고 중국과의 대화를 준비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양국간의 경색적인 관계에도 약간의 긴장완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과 우편통신을 허용했고, 약간의 전신도 허용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상호간의 존재에 대한 확인 수준을 넘지 못했다. 접촉기에 중국의 대 한국관은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최초의 공식적인 접촉은 1983년 5월 중국 민항기가 피랍되어 한국의 춘천에 불시착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회담이 이루어졌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중국간에는 활발한 접촉이 이루어졌다. 갖아 두드러진 분야는 스포츠 분야였다. 그러나 양국은 경제적 관계에 비해 정치적인 관계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상태에 있었다. 한중 양국은 접촉기를 거치자마자 급속하게 교류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88년 10월 대한무역진흥공사와 중국국제무역 촉진위원회 간에 정부차원의 무역사무소 개설에 관한 기본적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탈냉전이라는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로 한국은 1990년 소련과 수교를 맺게 되는데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의식하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약화시켜 한국에 대한 정책의 폭을 넓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992년 8월, 한국은 대만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를 단행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