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조선시대의 관료제도와 토지제도의 비교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2.08.21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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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 고려시대 관료제
2. 조선시대 관료제
3. 고려시대 토지제[전시과]
4. 조선시대 토지제[과전법]
관료제 구성과 관료가 되는 법(과거제, 음서제 등)을 정리하였고
고려와 조선의 토지제도의 변천 배경과 과정 그리고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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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고려시대 관료
1)관료 구성
2)관료가 되는 법
2. 조선시대 관료
1)관료 구성
2)관료가 되는 법
3. 고려 토지제도 - 전시과
4. 조선 토지제도 - 과전법
본문내용
<문벌> 재상
- 전기에는 가문을 중시하는 문벌 귀족, 중기에는 무신, 이후 관직을 중시하는 권문세족
- 2품 이상의 관료로 중서문하성에 소속된 ‘재신’과 중추원에 소속된 ‘추신’을 재상이라함.
- 초기 재신 5명, 추신 7명. 총 12명.(재추회의에서 국가 중대문제 논의. 정책결정에 영향줌)
<일반 관료>
- 이런 관료의 구성은 광종 9년 (958) 과거제 실시와 더불어 성종 대에 내사문하성과 상서도성 제도가 성립되면서 본격화 되었다.
(문반 1품에서 9품까지 정원이 532명, 무반 3,867명으로 모두 4,399명)
- 군대 통수권은 문반에게 있었다. 고려는 양반 제대로 문반과 무반은 제도상 동등했으나 실제로 문반이 훨씬 우위에 있었다. 전쟁 또는 내란 시 통수권은 문반이 가졌고, 무반이 오를 수 있는 최종 지위는 3품까지였다.
<청요직>
특히 관료들이 선망한 직종.
· 사관: 역사를 편찬하는 직종
· 언관 : 왕에 대한 간쟁이나 관리들의 비행을 감시하는 직종
· 문한관 : 각종 외교문서와 국왕의 교소를 작성하는 직종
-요즘 가장 선망 받는 의사, 변호사, 외교관 등은 이 시기 잡과를 통해 뽑는 하급 기술 관료직
<동정직>
- 과거를 통해 매년 관료가 선출 되지만 정원이 4,399명 밖에 안되므로 바로 현직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산직인 동정직을 주었다.
<중간계층- 이속집단>
- 향리 (지방행정 실무) : 고려 초기 강력한 지방 세력을 중앙으로 포섭하기 위해 본관을 지정해주고 성씨를 부여하며 그 지역의 지배를 허용함. 고려 중기에 과거제를 통해 중앙에 진출
- 서리 (관청에서 문서 작성 및 관리)
→ 세습하는 특정 신분으로 직역이 고정되었고 역시 세습되었다.
참고 자료
김판석, 윤주희, 『고려와 조선왕조의 관리등용제도』, 2000.
조성택, 최연택, 『고려와 조선왕조의 관리등용제도 변화 연구』, 2010.
박종기, 『새로 쓴 5백년 고려사』, 2010.
김윤정, 『고려전기 집권체제의 정비와 관복제의 확립』, 2010.
『국사』 국사편찬위원회, 국정도서편찬위원회 (2004년 3월 1일). 서울: (주)두산
『고려사절요』
『고려사』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p.151~166』 역사비평사, 역사비평편집위원회, [2002]
「고려전기의 권농과 전시과 」 이경식 ( Kyung Sik Lee ) , 동방학지 : Vol.128 No.- [2004]
「고려시대 관료는 어떠한 방법으로 토지를 분급받았는가」, 이상국 <내일을 여는 역사, Vol.18 No.-,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