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에 관한 업적
- 최초 등록일
- 2002.11.27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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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가계
2. 즉위과정
3. 유교정치의 기틀마련
4. 편찬사업의 융성
5. 훈민정음의 창제
6. 과학기술의 발전과 기술서적의 편찬
7. 법전의 정비
8. 불교에 대한 시책
9. 평가
본문내용
원래 태종의 뒤를 이을 왕세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었으나 개와 매〔鷹〕에 관계된 사건을 비롯한 세자의 일련의 행동과 일들이 태종의 선위에 대한 마음을 동요시켰으며, 또한 태종은 자신이 애써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왕권을 이어받아 훌륭한 정치를 펴기에 양녕대군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다. 태종의 마음이 이미 세자 양녕대군에게서 떠난 것을 알게 된 신료(臣僚)들은 그를 폐위할 것을 청하는 소(疏)를 올려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기에 이르렀다. 즉, 태종에게는 왕후 민씨 소생으로 양녕·효령(孝寧)·충녕·성녕(誠寧) 등 네 대군이 있었는데, 이때 양녕대군은 벌써 두 아들이 있었으므로 그를 폐하고 새로이 세자를 세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세자폐립에 대한 의론이 분분하였다. 그러나 태종의 마음은 이미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에게 쏠려 있었다. 1418년 6월에 태종은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민하고 또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방법 등도 잘 안다.” 하여 그를 세자로 책봉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충녕대군에 대한 세자책봉은 태종의 뜻에 따라 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대부분의 신하들도 이를 환영하였다. 두달 뒤인 1418년 8월 10일 태종의 내선(內禪)을 받아 세자 충녕대군이 왕위에 올랐으니 이 사람이 세종이다.
참고 자료
DIGITAL 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