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19세기 콜레라
- 최초 등록일
- 2002.11.02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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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9세기 유럽사회의 콜레라의 발생
1)콜레라의 발생과 그 증상
2) 19세기 콜레라의 유행양상
2. 콜레라에 대한 논쟁과 콜레라의 종식
1)콜레라를 둘러싼 논쟁과 세균의 발견
2)영국의 예방대책
3. 콜레라가 유럽사회에 미친 영향
본문내용
1)콜레라의 발생과 그 증상
18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당시 유럽과 여러 문명세계에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1845년∼1849년에 걸쳐 전 유럽사회에 무서운 변화를 초래했던 감자흉년도 그 영향력은 컸으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산업혁명의 힘으로 육상이나 해상의 수송수단이 급속히 발달함으로써, 필요한 식량들을 신속히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혁명으로 농촌의 인구가 대도시로 대거 몰리게 되었는데 이로 인한 전염병의 발생이 더욱 잦아지고 다양해지게 되었으며 19세기 유럽과 문명세계의 주민들은 과거에 비해 더 길고 극심한 질병의 부담을 갖게 되었다. 이때 도시로 유입된 농촌의 이주자들은 대다수가 농촌에서 영양결핍과 과로의 시달림을 받아왔으며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인 오두막에서 가축과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이주해 온 도시와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사람들은 비좁은 방이나 물이 새는 지하실, 공기가 부족한 다락에 빽빽하게 몰려 살았으며 석탄 연기로 인해 대기가 컴컴해졌고, 환기불량과 가정과 일터의 혼잡은 공기로 전염되는 질병의 전파를 도왔다.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와 배설물로 런던은 악취를 풍겼으며 가난한 이들은 심지어 분변을 방에 모아두었다가 거름으로 팔기도 하였다. 당시 런던에는 7개의 하수도가 있었으나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파이프도 훼손되어 있었다. 이 하수도에는 인간과 동물이 배출한 수 톤의 분변, 도살장의 폐기물, 병원과 가죽공장의 악취 나는 오물, 때로는 시체 그리고 묘지의 오염된 지하수 등이 쏟아 들어져갔다. 이 모든 오물의 종착지는 템스강이었으며 정수시스템을 갖춘 곳은 8개의 용수회사중 단 한 곳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수인성 질병이 일단 한번 생겨나면 단 한가지의 수인성질병이라 할지라도 그 전염성은 확실한 것이었다. 산업사회의 출현에 따라 나타난 질병양상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치명적이었던 현상이 바로 콜레라의 범세계적인 유행이었다.
참고 자료
※ 參考文獻
Karlen, Arno, <전염병의 문화사> 사이언스 북스, 2001
McNeil, William H ,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1992
예병일, <의학사의 숨은 이야기> 한울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