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와 그의 문학
- 최초 등록일
- 2011.10.11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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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윤선도와 그의 문학
목차
Ⅰ. 서론
Ⅱ. 윤선도와 그의 문학
1. 그의 생애와 격변기 때 생긴 주요 국면들
Ⅲ. 당쟁의 피해가 남긴 찬란한 그의 공적들
1. 고산 유고와 어부사시사
Ⅳ. 숨을 쉬기에 가장 적합한 세계 진입
1. 자연과의 교감 속에 낳은 정조의 서정시
Ⅴ. 사상이 큰 어부사시사
1. 체험을 통한 어부사시사
Ⅶ.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를 흔히 삼대가인이라고 부른다. 이 세 시인들은 당시에 있어서 자기 나라 말로서 가장 우수한 시작품을 가장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봉건시대의 장구한 기간에 쓰던 문학의 언어는 국민들이 쓰는 모국어가 아니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서 자기 모국어로써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그 자체가 민족적 특성을 더 잘 구현하며 국민에게 가까이 가는 길이고 그만큼 국민성을 더 높이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자기 나라 말을 가지고 문학작품을 창작하려는 시도는 오랜 옛날부터이다. 한 민족의 독특한 실생활어라는 이디엄으로 쓰기 시작한 때는 삼국시대 때부터다. 신라의 시인들이 향찰 표기법을 가지고 향가를 창작한 것은 그러한 이디엄의 실례다. 그런데 향찰 표기법 자체가 한자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없었던 당시 국민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남아 있었다.
15세기에 우리나라의 고유한 민족문자인 훈민정음 - 한글이 창제됨으로써 서사어 - 글말과 구두어 - 입말이 일치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말과 글자로써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학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길이 열리였다. 그러나 이 역사적 과업은 순탄하게 수행되지 못하였다. 봉건통치계급은 국민들에 대한 착취와 압박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우민화정책을 추구하면서 한글을 천시하고 그 보급을 방해하였다. 특히 연산군과 같은 폭군은 한글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 어떤 강압과 폭행도 역사의 전진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국민들은 민족적 정서와 기호에 맞는 형식의 모국어 문학을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삼대가인 중 한 사람으로서 정철과 더불어 시가사의 한 봉우리를 이루는 인물인 고산 윤선도이다. 유독 국민시가만이 주목을 받은 것은 그만큼 그의 시조에서 보여준 연금술에 가까운 미적 발현이 눈부신 까닭이다. 고산의 작가적 면모를 추적해 가는 이 글 또한 이러한 점을 기반으로 하여 출발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고산연구회, ‘고산연구’ 1~4호, 1988~1990
정운채, ‘윤선도의 시조와 한시의 대비적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3.
김하명, 조선고전문학 선집 43, 문예출판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