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역사학의 성립 과정 서술
- 최초 등록일
- 2011.07.01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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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위 글은 근대 역사학(식민사관, 민족주의 사관, 사회경제사학)의 성립 과정에 대해 서술하였고,
또 이에 대한 저의 의견을 담은 리포트입니다.
이거 제출하고 A+맞았습니다!! ㅎ
목차
●식민사관의 정의
●일본 식민사관의 내용
●식민사관의 성립과 확대
본문내용
이 글을 통해서 식민지 시대라는 시대적인 배경 안에서 근대 역사학이 성립하게 된 과정과, 더불어 성장한 우리 민족주의적 역사인식에 대한 내용을 이론 위주로 나누어 간략히 요약·설명하고, 나의 생각 및 느낀 점에 대하여 발표하겠다.
본 론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학이 성립 발전한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응하여 발전하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서 식민사관이란 단어의 정의를 네이버 백과사전의 요약을 통해서 적어보자면 "일제가 한국침략과 식민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역사관"을 뜻이다. 이와 같이 일제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하고 좀 더 조직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식민사관을 세웠다. 그 간략한 내용으로는 일본은 신공왕후의 신라정복설과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한국역사를 만주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만선사(滿鮮史) 이론 그리고 당시의 한국 경제를 일본 고대의 촌락경제수준으로 보는 이론 등이 있다. 이러한 논리는 20세기 초 조선침략이 본격화되자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정체성론, 타율성론으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의 토대가 되었다. 일본의 이러한 이론들은 현재까지도 상당히 이슈가 되는 문제이므로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개항 이후 일본의 침략정책에 부응하여 형성되기 시작한 식민사관은 합방과 더불어 식민통치를 위해 더욱 확대 적용되기 시작하였다.그러나 합방 이후 식민사관은 역시 조선총독부의 주도 아래 확대·보급되었다.침략과 합방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였던 식민사관은 결국 조선총독부의 지휘 아래 식민지 조선의 동화정책수단으로 그 기능을 확대하였다. 합방이후 일제는 무단통치를 실시하면서 기반을 더욱 다지려 한다. 그러나 3·1운동 이후 무단통치의 한계를 느낀 일제는 문화정치에 가탁(假託)한 민족분열정책을 실시하였다. 3·1운동은 따라서 우리 민족이 투쟁하여 얻어낸 최초의 민주적인 성과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