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
- 최초 등록일
- 2010.06.19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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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문학과 미술 수업시간에 썼던 리포트입니다.
베르사유궁전의 한 테마를 가지고 사진과 설명을 붙였습니다.
a+ 받고 앞에나가 발표했던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베르사유 궁전
2.본론
-헤라클레스의 방
-왕의 방 (축제의 방)
-전쟁의 방(War Drawing Room)
-거울의 방(La Galerie des Glaces, Mirror Room)
-평화의 방(Peace Drawing Room)
-왕비의 방
3.결론
본문내용
베르사유 궁전(LE CHATEAU DE VERSAILLES)은 ‘짐은 곧 국가다’라고 했던 절대 권력자 태양왕 루이 14세가, 선왕인 루이 13세가 1631년에 지은 자그마한 수렵용 성이 있던 이 곳에 1668년 르보, 르브룅, 르 노트르에게 명하여 지은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대궁전이다.
베르사유 궁은 조경설계사 르 노트르(Le Notre)가 설계한 것으로, 그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프랑스식 정원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인 르 노트르는 베르사유의 배치에 있어서 한 도시와 궁전, 정원과 거대한 공원들을 서로 연결시켰다. 궁전은 전체구성의 중심이며, 그 도시의 정상을 향해 파리에서는 세 개의 주요 도로가 약 20~25도 각도를 이루며 궁전의 입구에 집결했다. 소위 ‘거위발’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도로 배열법으로, 전망이 탁 트인 세 개의 가로가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때 국왕은 “인공과 황금의 힘에 의해 자연을 개량하고,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즐겁다” 고 했다.
베르사유 궁은 1685년에 완공되어 루이 14세는 파리의 루브르 궁에서 이곳으로 왕궁을 옮겨 왔으며 이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Marie-Antoinette)가 이곳에서 프랑스 대혁명으로 비운을 맞기도 했다.
1871년 보불전쟁에서 패한 뒤 궁전은 파괴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한 베르사유 궁전은 재미있는 일화가 많은데 루이 14세가 이 궁전을 지은 것은 자신의 신하 포개가 ‘보-르-비콩트’라는 화려한 성을 지은 것에 분개해 그보다 더 나은 성을 짓기로 마음 먹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은 군주의 별장이나, 사냥터에 지어지던 이제까지의 왕궁과는 그 개념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속적인 권력이 집합된 하나의 특별한 공간이다.
궁궐이라는 건축물만이 아니라 시선이 닿는 주위 경관의 모든 것들이 왕의 권위에 절대 복종한다는 이념 하에 인공적으로 다듬어졌다.
궁전을 세웠다기 보다는 자연을 개조했다고 하는 편이 적합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마루바닥에서부터 천장에 못 하나까지 그 당시의 최고급품만을 사용해서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의 궁전을 완성하였다. niche를 만들어 역사 속의 인물들의 조각품을 전시해 두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