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가에 대한 연구, 작품분석
- 최초 등록일
- 2010.06.01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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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제 수업시간에 제출했던 과제입니다,. 많은 도움되기를 바랍니다.
목차
1. 본문
2. 배경설화
3. 핵심정리
4. 황조가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
4.1. 〈황조가〉를 서사시로 보는 견해
4.2. 〈황조가〉를 탄식요로 보는 견해
4.3. 〈황조가〉를 주가로 보는 견해와 그에 대한 반박
4.4. 〈황조가〉를 서정시로 보는 견해
5. 참고사항
본문내용
2. 배경설화
유리왕이 남긴 〈황조가〉와 그 배경담에 대한 기사는 지금 널리 알려진 대로 「삼국사기」 〈琉璃王〉 3년에 전한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삼국사기」 이전은 시가나 배경담의 실체와 전승 상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전하고 있는 「삼국사기」유리왕 3년의 기사를 중심으로 사건의 진행과정을 쫓아서 그 실상을 전착하고자 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왕비 송씨가 유리왕 3년 10월에 죽었던 송비에 대한 사망기록이다. 송씨는 1년 전 유리왕 2년 7월에 왕비가 되었고 16개월 뒤 타계하였으니 多勿候 송양의 딸이었다. 그리고 송씨는 ‘王妃松氏薨’의 記事로 볼 대 正妃가 분명하다. 송비가 죽은 뒤 새로 화희와 치희를 취하여 繼室로 삼았다는 기록이다. 여기서 두 계실은 정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妃’자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室’자로 표기해서 ‘妃’와 차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임금의 正妃는 상식적으로 동시에 두 사람을 둘 수 없는 법인데 배경담에는 鶻川人화희와 漢人인 치희 두 사람을 동시에 맞았기 때문이다. 두 여인이 유리왕의 총애를 두고 서로 다투다가 이국인인 치희가패배하고 慙恨亡歸한 사실이다. 이 화희와 치희의 다툼을 부족들의 싸움으로 해석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이 치희의 축출은 外邦族에 대한 土族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