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와홀로코스트산업
- 최초 등록일
- 2010.04.11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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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량학살에 대한 레포트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편견
2. 대량학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
3. 홀로코스트산업
Ⅲ. 결론
1. 홀로코스트의 특수성
2. 또 다른 매카시즘을 경계한다.
IV. 조원들의 생각
<부록>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대량학살은 끔찍하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학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제대로 된 항변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량학살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유독 몇몇 사례들로 국한되는 듯하다.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 1997)』, 『쉰들러리스트(Schindler`s List, 1993)』의 영상이미지가 심어주었던 대량학살의 사례들은 유독 유태인들의 대량학살인 홀로코스트로 한정된다.
20세기가 낳은 괴물 ‘히틀러’로 인해 발생했던 인간성 말살의 극한까지 보여주었던 홀로코스트는 다른 학살의 기억을 압도한다. 하지만 희생자 수만 감안한다면 홀로코스트는 특별한 학살의 사례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유독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만이 두고두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회자되는 것일까?
Ⅱ. 본론
1.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편견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을 목표로 삼은 것은 크게 두 가지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첫째, 정치적 위협이다. 히틀러는 유대인이 독일을 파괴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는 거대한 음모에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대주의와 국제 마르크시즘과의 부정한 동맹에 대한 믿을 지니고 있었다.
둘째, 생물학적 위협이다. 나치는 유대인을 타인의 노동과 창의력에 의지해 가는 기생충 같은 존재로 인식했다. 이들은 종족 간 교배를 통해 타인종의 순수성과 힘을 파괴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들이 곧바로 유대인에 대한 학살로 이어지지 않았다. 히틀러와 여타의 급진적 반유대주의자들이 독일에 대한 유대인의 위협은 광적으로 확신했지만, 대부분은 체계적인 대량학살이 유대인 문제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나치의 목표는 독일과 독일이 점령한 모든 지역에서 유대인들의 영향력을 일소하는 것이었다. 유대인 절멸의 결정은 나치가 덜 유혈적인 해결방안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문제와 부딪히게 된 이후에나 이루어졌다.
그리고 비단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독일의 경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 반 유대적인 태도와 유대계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이 독일에서보다 러시아, 폴란드, 프랑스, 기타 유럽 국가들에서 더 심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독일의 유대인들은 차별과 증오의 대상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마이클 루이스가 결론을 내리는 것처럼, “어떠한 판단 기준을 따르더라도 나치가 권력을 잡기 이전의 독일이 유럽에서 가장 반유대적인 국가였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사라 고든은 이렇게 지적한다. “독일인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가 특별할 정도로 광폭했더라면, 유대인들은 특히 다른 국가에 거주하고 있었던 유대인들과 비교할 때 특히 다른 국가에 거주하고 있었던 유대인들과 비교할 때 그렇게 편하게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1. 노르만 핀켈슈타인, 신현승 역,『홀로코스트 산업』, 한겨레신문사, 2004.
2.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김학이 역,『나치 시대의 일상사』, 개마고원, 2003.
3. 로버트 S. 위스트리치, 송충기 역,『히틀러와 홀로코스트』, 을유문화사, 2004.
4. 벤자민 발렌티노, 장원석․허호준 역,『20세기의 대량학살과 제노사이드』, 제주대학교 출판부, 2006.
5. 박노자,「비극의 상업화, 홀로코스트」,『 한겨레21』제436호, 2002년11월28일
(http://www.hani.co.kr/section-021070000/2002/11/0210700002002112804360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