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대만
- 최초 등록일
- 2010.04.05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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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식민지 대만의 교육 요약 발표문
목차
머릿말
대만교육령 제정과정
대만판 교육칙어 발포 구상
우펑 전설의 개편과정
맺음말
본문내용
이 장에서는 향신층의 교육요구와 관련해 1915년 공립타이중학교가 설립된 경위와 그 배경을 알아본다. 교육내용에서도 대만판 교육칙어를 발포하려는 구상이나 한민족의 민간신앙에서 유래한 우펑 전설을 이용하는 등 한민족의 사상과 세계관을 환골탈태시켜 교화이념을 재구축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국가통합 차원에서 평등화를 지향하는 것과 문화통합차원에서 차이화를 지향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중층적 차별구조를 강화하면서 한민족 향신층과 ‘협력체제’를 재구축한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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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교육령 제정과정
▶ 구마모토 시게키치의 『대만교육령 제정 유래』를 보면 구마모토는 제2차 대만교육령에서 내지연장주의가 부분적으로 실현된 것이 구마모토의 주관적인 ‘소신’이었다고 했다. 그가 주관적인 의도로는 내지연장주의 교육제도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나 그것이 본래 소신이었는지 검토해야 한다. 또 소신은 아니었다면 전환을 촉구했던 요인이 무엇인지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1) 향신층의 교육 요구와 중학교 설립 문제
구마모토가 집필한 『(비) 대만 교육에 대한 한두 가지 비견 및 의문』을 보면 식민지주의 통치방침에 근거한 교육비장려론과 실질적 동화 부정론을 계승하는 것이 구마모토의 소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년 후에는 논조가 변화 한다. 1913년 2월 스즈키 사부로 관방문서과장 명의로 대만총독부 국장회의 구성원에게 ‘숙제’가 내려진다.
①내지인 대상으로 설치된 소학교, 중학교에 어떤 제한을 두어 본도인을 입학시키는 것의 가부
②본도인을 대상으로 특별히 중학 보통과정의 학교를 설치하는 것의 가부
③만약 설치한다면 학과목, 수업연한 등의 내용 여하
구마모토가 내놓은 ‘답안’은 ①과②는 ‘가可’였고, ③에는 4년제 대만고등학교로 한다는 것이었다. 구마모토는 대만인의 지식을 향상시키지 않는 것이 대원칙이기는 하나 도민이 내지 및 대안의 상황을 보고 듣는 데서 오는 영향’ 때문에 현상유지가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구마모토 외에도 답안을 작성한 사람은 오쓰 린페이 번무본서장, 가메야마 리헤이타 경찰본서장을 비롯한 총독부 요직자 열두 명이었다. 총독부내부에서도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지만 과반수가 조건부의 찬성의견이었다. 그 배경에는 대만인 향신층의 불만이 점차 누적되어가면서 자식들을 내지 혹은 대안으로 유학시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향신 내지 유식 계급은 쿨리계급과의 차별을 바라는 동시에 내지인과의 차별교육에 불만의 뜻’을 쏟아내고 있었다. 중등학교의 설립에 관해서는 ‘토번사업’을 최우선으로 했던 사쿠마 총독이 대만인의 부역이나 기타 봉공이 쉽지 않을 때 이를 기회로 삼은 린셴탕이나 구셴룽의 진정을 받아들였다는 사정이 있었다.
1914년 1월 본국의 중학교와 명칭·연한·교육과정 등이 거의 동일한 형태의 학교를 린셴탕, 구셴룽 등의 거주지에 가까운 타이중에 설치하는 방안이 총독부 수준에서 결정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