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사
- 최초 등록일
- 2009.07.02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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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부여문화에 대해서 조사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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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현재 대다수 국민들은 만주지방에서의 우리나라 역사는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로 이어져서 발해를 마지막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사이 고조선의 멸망과 고구려로 이어지기까지 부여란 국가는 고조선 멸망 이전에 건국되어 멸망하기 까지 오랜 시간 동안 만주지방에서 역사를 함께해온 나라이다. 부여가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뿌리가 모두 부여로부터 나온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부여는 단군 조선을 계승하였다. 이것이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맥을 바로 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역사에서는 부여 역사라는게 거의 없어졌다. 중국 한 무제가 부여의 5대 단군을 죽이려 공격하였다가 패배한 일로 중국의 역사가들과 일제 식민시대에 역사가들에 의해 부여의 역사를 없애 버린것이다. 부여는 단군조선과 고구려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열국시대의 역사의 맥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함으로 우리는 우리 한민족을 제대로 알려면, 부여사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부여는 서단산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국가로서 기원전 6∼3세기사이에 발생된 국가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조선 멸망 이전에 세워진 나라이다. 그 이유는 부여가 최초로 중국 측 기록에 등장한 것은 ‘사기’의 화식열전인데 그 기록은 이렇다 “연나라는 발해와 갈석 사이에 있고 그 곳은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남으로는 제나라와 조나라가 통하고 동북은 오랑캐와 이웃했다. 북쪽으로는 오환과 부여와 인접했고, 동쪽으로는 예․맥․조선의 이익을 통괄했다.” 이 기록을 보면 부여와 고조선이 동시대에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한편 그 이전의 일을 기록한 `흉노전`에는 "흉노의 좌측왕과 장수는 동방 쪽에 있으며, 상곡(上谷)으로부터 더 나아가는 자는 예맥과 조선을 만나게 된다"라고 쓰여있어 당시에는 부여라는 나라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부여의 성립 시기는 기원전 4세기 전후로 추정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한다면 부여와 고조선은 약 300년 동안 함께 존속했던 것이 된다. 그런즉, 부여는 고조선의 후국 내지 혹은 고조선을 이루는 독립적인 연합국가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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