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9.04.12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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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복궁 답사 보고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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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2009년 3월 28일 사회변동과 역사의식 과목의 답사과제를 위해 경복궁에 다녀왔다. 아침 10시에 경복궁 매표소에서 교수님과 학우들을 만나기로 하였지만, 늦잠을 자게 되어 30분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30분쯤 지났으니 벌써 많이 나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답사 경로의 중간부터 학우들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처음 경복궁의 입구를 들어갈 때 까지만 해도 별 생각 없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나의 오산이었다. 경복궁의 규모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넓어 나를 압도해 왔던 것이다. 경복궁을 2시간동안 헤매었지만 교수님도, 학우도 어떤 자취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자 돌아다니며 답사한 결과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경복궁은 비록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까닭으로 과거와 같이 생기가 넘치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살았음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아직도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경복궁은 안내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식의 구경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운이 좋게도 여러 관광객들을 이끄는 가이드들이 여기저기서 설명에 열중하고 있어 간접적으로나마 학습하게 되었다. 인상이 깊었던 곳 중에 한곳은 지도의 ④번에 해당하는 근정문이었다. 바로 근정전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이다. 거기서 만난 가이드는 근정문 문의 수는 3개이고 기둥은 5개라고 하면서 이는 우리가 제후의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였다. 반면 천자의 나라인 중국은 문의 수는 5개이며 기둥은 7개라고 하였다. 과연 스스로를‘소중화’라고 하며 중국을 섬겼을 조선의 면모가 문 하나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근정문을 직접 통과하지는 않고 빙 둘러서 근정전 앞에 도착했는데, 정1품, 종1품 등의 글씨가 씌어진 비석과 그 비석이 하나하나 세워져 있는 근정전 앞의 뜰이 보였다. 많은 신하들 앞에서 호령을 했을 왕의 위엄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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