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의 국토개발
- 최초 등록일
- 2001.06.09
- 최종 저작일
- 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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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토지조사사업(不法測量)
3. 산미증식의 하천개수공사
4. 수력개발
5. 철도건설 (1)경인철도
(2)경부철도
(3)철도건설의 영향
6. 결론
본문내용
개항이전 인구가 많지 않고 교통이 불편했던 시기에는 국토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으며, 종합적인 안목에서 개발을 계획하거나 추진할 필요성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것이 일제 강점기에 들어오면서 일제의 필요에 의해 적극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1910년 우리 나라를 강점하자 세 가지 통치 방침을 세웠다. 첫째는, 조선을 영원한 농업국가로 통치하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일본은 매년 400∼500만 섬의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 나라에서 보충하자는 속셈이었다. 둘째로는, 일본서 만든 상품의 판매시장으로 통치하자는 것이었다. 마지막 셋째로는 명치유신 이래로 일본의 군벌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들 군벌에 의한 일본의 살길은 만주와 北支 그리고 시베리아 일부를 포함한 이른바 대륙진출을 국가발전 계획으로 삼았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우리나라를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통치하자는 것이었다.
개항(開港)이전까지 규모가 작은 수리시설이라든지, 해안지방의 포구가 없는, 과거부터 내려오던 국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19세기말, 여러 포구가 개항장으로 지정·개발되면서 우리 나라는 비로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김의원. 1984. 『국토이력서』. 每日經濟新聞社 pp107∼189, pp251∼256.
·권혁재. 1998. 『한국지리』. 법문사 pp491∼494
·김형국. 1983. 『국토개발의 이론연구』. 전영사. pp98∼111
·김의원. 1982. 『한국국토개발사연구』. (주)대학도서. pp392∼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