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회 형성
- 최초 등록일
- 2013.10.02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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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삼국지』vs『삼국사기』
2. 고조선과 삼한의 문화적 계승관계
3. 삼국유사
4. 삼한
5. 고구려
6. 신라
7. 백제
본문내용
고조선과 삼한의 문화적 계승관계
● 연나라 사람 위만이 중국에서 선진적 철기문화를 가져옴. 위만의 반란으로 단군조선의 준왕이 한반도 남쪽으로 피신. 피신해 올 때 위만으로부터의 철기문화를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그냥 오진 않았을 것)
● 청동기 유물이 집중 출토되는 마한 지역 소국의 상당 부분은 서기전 3~2세기의 청동기 문화를 배경으로 대두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와는 달리 청동기 유물에 비하여 철기유물이 다량 분포된 한강 유역이나 경상도 지역의 소국(小國)들은 서기전 1세기 이래 철기의 유입, 위만조선을 비롯한 북방 유이민의 정착을 계기로 형성되는 것이 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ex) 경주에서 철기가 갑자기 발견
“우리 조상은 본래 대장장이었소.”
<<삼국유사>>
탈해신화에서 신성성을 위한 도구란 숯돌과 숯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선진문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철기문화를 의미한다.
이는 철기라는 선진문물이 신적인 능력을 지닌 이가 아니면 지니거나 만들 수 없는 보물이라 인식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신화적 모티프이다. 탈해는 어느 누구도 지니고 있지 않은 선진문물과 선진기술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탈해는 신라에 안주하기 위해 길지(吉地)를 찾고 있었다. 그가 발견한 길지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는 그 집을 빼앗을 심산으로 집자리에 숫돌과 숯을 몰래 묻어 두었다. 뒤에 호공을 찾아가 조상이 살던 집이라 주장하게 되어 마침내 송사가 벌어졌다. 그 자리에서 탈해는 스스로 조상이 대장장이였노라고 주장한다.
그가 숫돌과 숯을 가진 대장장이라는 사실은 철기문명을 가진 이주민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탈해는 이렇게 하여 호공의 집을 차지해 버린다. 탈해는 호공이 토착민이 아니라 자신처럼 해외에서 이주해 온 인물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주민이었으나 신라에서 이미 막강한 힘을 지니고 정착한 호공이 이에 대응조차 못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