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궁(덕수궁)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8.07.30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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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덕수궁 옛 이름 경운궁에대한 답사기입니다. 교수님께서 덕수궁에대한 이해가 독창적이라는 이유로 호평과 A+를 받은 리포트 입니다.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덕수궁에대한 저의 생각과 내용을 담은 심혈을 기울여 정성껏 쓴 리포트입니다.
목차
(1) 경운궁(덕수궁)을 선택한 이유
(2) 덕수궁의 본명은 경운궁
(3) 시대에 따라 본 경운궁
1) 선조, 광해군 시대의 경운궁
2) 고종시대의 경운궁
3) 순종 시대 이후의 경운궁
(4) 슬픈 역사를 간직한 덕수궁
1) 축소되고 변형된 덕수궁
2) 덕수궁 담장과 청동분수대
3) 덕수궁의 양관들
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양옥 I - 정관헌
② 지금까지 남아 있는 양옥 II - 석조전
③ 지금까지 남아 있는 양옥 III - 중명전
4) 석조전 정면의 ‘이화(배꽃)문양’
(5) 현재 덕수궁에 남아 있는 각 전각들의 양식과 역사 배경
1) 대한문
2) 중화전, 중화문
3) 함녕전
4) 즉조당
5) 준명당
6) 석어당
7) 덕홍전
8) 석조전, 별관
9) 정관헌
(6) 덕수궁 답사를 마치면서
본문내용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궁궐에 대한 관심은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등에 편중되어 왔었다. 서울의 5대 궁궐에 속해 있었던 경희궁은 그 흔적이 거의 없어졌으며, 경운궁은 축소되고 변모되어 그 이름마저 덕수궁으로 바뀌어 하나의 별궁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운궁은 우리의 독자적인 관영 공사 체제로 조영된 조선 왕조의 마지막 궁궐이다. 그러므로 이 궁궐은 현재와 쉽게 연결된다. 경운궁은 당시 우리의 국력이 총동원되어 경영된 궁궐이라 할 수 있다. 경운궁에는 우리 나라 방방곳곳의 건축자재와 그때까지 축적된 우리 나라 전통적 건축기술이 총동원되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경운궁의 석조전은 우리 위정자들에 의해 계획되고 건축되었다는 오해를 받았다. 그러나 중화전이 우리 민족 세력을 상징하는 건축임에 반하여 석조전은 외국 침략 세력을 과시하는 건축이며 경운궁의 중건 도감에서 주관하여 지은 건축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따라서 지금의 경운궁이 석조전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보존되고 있는 것은 아주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금부터 불과 백년도 되지 않은 과거의 사실이 망각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내가 이 경운궁, 현재의 덕수궁에 대해 조사하려는 이유도 이것에 있다. 경운궁에는 우리 민족 국치의 역사가그대로 반영돼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궁궐은 건물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그 속에 지난 왕조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궁궐을 새로 짓거나 개축하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야기하기도 했고 또한 시대의 부침과 함께 궁궐도 부침을 거듭했다. 특히 외세 지배하에서 궁궐은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수난을 겪었으니 궁궐이야말로 일제하 수난사의 생생한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궁궐 치고 일제가 짓밟지 않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경희궁의 경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아예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으며 그나마 남아 있는 궁궐들은 원형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조선왕조를 집어삼키면서 일제는 조선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정권의 상징인 궁궐부터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