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표류기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8.06.17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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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멜표류기> 이 책을 근간으로 하여 KBS 「일요스페셜」에서 제작한 역사 방송물을 보고 간략히 내용을 요약하고 소감을 줄여 써 보려 하는 바, 이는 <1부 중세조선의 비밀 - 하멜표류기>와 <2부 조선항로를 봉쇄하라>의 총 2편으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밝혀둔다.
목차
Ⅰ. 표류
1. 하멜 일행 표류 경위
2. 표류 동안의 생활
Ⅱ. 조선 탈출
1. 일본의 하멜일행에의 대우 (심문과정)
2. 조선과 일본의 의견대립
Ⅲ. 하멜 일행 표류의 의미
Ⅳ. 사견
본문내용
Ⅰ. 표류
1. 하멜 일행 표류 경위
네덜란드의 호르컴 출신인 그는 선원이 되어 인도로 향했다. 인도 동인도회사 소속의 하멜은 서기에 이어 보좌관이 되고 1653년에는 장부 계원이 되었다. 장부 계원의 업무는 선박의 항해 유지와 재무 관리는 물론 재정을 맡아 보는 것이었기에, 7월 18일 하멜은 이런 임무를 맡아 대만으로 가는 도중에 스페르웨르호에 승선해 바타비아를 떠났다. 1653년 7월 16일 대만에 도착했다. 배는 바타비아를 다소 늦게 떠났는데, 네덜란드에서 오기로 한 대만에서 근무할 예정인 군인들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인들 없이 스페르웨르호는 대만으로 떠났고 이때의 망설임이 하멜과 그의 일행들이 겪게 되는 일들의 원인으로 보여 진다. 즉, 여러 경유지를 거쳐 나가사키로 항해하던 중 폭풍우에 밀려 8월 중순 제주도 부근에서 파선을 당한다.
2. 표류 동안의 생활
배에 타고 있던 전체 일행 64명 중 살아남은 36명은 당시 제주 목사 이원진의 심문을 받고 이듬해 서울로 압송되어 훈련도감에 편입되었다. 낯선 이국생활은 고통일 수밖에 없었고, 이들은 서울에서 2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한 뒤 1656년 3월 전라도로 옮겨졌는데, 그 동안 14명이 사망한다. 생존자 22명은 1663년 여러 지방으로 분산 수용되었고 이들은 잡역에 종사하며 억류 생활을 지속했으며, 구걸을 하기도 했다. 하멜이 생활 한 곳은 전라도 여수 좌수영이었다. 거기에서 동료들과 배 한척을 마련하여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고 부근의 섬들을 다니면서 주변 바다의 조수와 풍향을 익혔다.
Ⅱ. 조선 탈출
1. 일본의 하멜일행에 대한 대우 (심문과정)
하멜과 그의 일행들은 조선에서 운 좋게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1666년 10월 23일 Esperance 호로 바타비아로 떠나길 희망했지만 그들은 허가를 받지 못했고 데시마에서 1년을 더 지낸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0월 25일 심문이 있었다. 이 심문은 하멜과 그의 일행이 조선인 어부의 배로 나가사키에 도착한 날인 1666년 9월 14일로 되어 있었다. 그러면 심문이 이미 행해졌음이 분명하다.
참고 자료
도서 <하멜표류기>
KBS 일요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