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대통령과 이라크전 (전쟁과 평화)
- 최초 등록일
- 2008.02.29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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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3 때였다. 어느 수업시간 이였는데, 선생님께서 TV를 켜주시는 것이었다. 지금 미국에 테러가 일어났다고 좀 보자고 하시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지 하고 TV를 보는데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고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건물이 무너지는 무서운 광경들이 TV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 날은 2001년 9월 11일이었다. 그리하여 이 테러사건은 ‘911테러사건’이라고 불리 우기 시작했다. 이런 갑작스런 테러사건이 있은 후 얼마가 흘렀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은 후세인 세력을 `악의 축`으로 여기고, 후세인이 살고 있는 바그다드를 비롯한 전 이라크에 대규모 공습을 시작하였다. 미국의 조지W.부시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이라크 무장해제를 위한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군사공격 초기단계에 돌입하였다’고 발언하였다. 사람들은 테러가 일어났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했다고들 생각하지만 꼭 그러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배경에 대해 찾아보니 부시 대통령이 선거기간 동안 대테러전쟁과 같은 자신의 세계관을 언급하기도 했으며, 대통령 취임 이후 이러한 생각들을 일부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9․11 테러가 발생했고, 이 사건은 부시의 생각을 기반으로 한 외교정책 활동을 더욱 가속화 시킨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라크전쟁 이전에 9․11 테러사건 역시 부시의 외교이념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 전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부시의 외교정책은 크게 보았을 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신념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신념은, 위험이 도사리는 세계에서 미국의 안보를 확실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호 국가들, 연합국, 국제기구의 제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미국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일도 중요했지만, 미국이 유일무이한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오르면서 서방 세계에 적대적인 국가나 단체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최고로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미국은 다른 국가들의 보호를 믿을 수도 없다. 게다가 명목상의 협약들은 분명 미국이 자국의 강력한 힘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제한할 거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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