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 화랑제도
- 최초 등록일
- 2007.12.09
- 최종 저작일
- 2007.07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교육사 화랑제도에 대하여 조사 작성 해보았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화랑도는 처음에 남모(南毛) ·준정(俊貞) 두 미녀를 뽑아 이를 원화(源花)라 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하여 300여 명의 무리가 모였으나, 이 두 여단장은 서로 시기하다가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하여 억지로 술을 권해 취하게 한 뒤 강물에 던져 죽여버렸다. 이 일이 발각되어 준정도 사형에 처해지고, 그 무리들도 화목을 잃어 해산하였다. 그 후 나라에서는 귀족 출신의 외양이 잘생기고 품행이 곧은 남자를 뽑아 곱게 단장하여 이름을 화랑이라 하여 받들게(단장으로) 하자 무리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이런 화랑은 우리나라의 미소년의 원조였습니다. 보통 꽃미남이라고들 하죠. 그렇습니다. 이 화랑 아무나 하지 못했습니다. 집안 좋고 잘생긴 미소년 만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꽃이란 글자를 썼죠. 게다가 화랑의 우두머리는 화주 즉 꽃의 주인이라고 했으니... 꽃자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거 같죠? 그리고 몇몇 향가에서 드러나는 낭도(화랑 밑에 부하비슷한거...)들의 화랑에 대한 사랑은 존경심을 넘어 사모의 감정에 가깝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득오라는 낭도가 죽지라는 화랑에게 바친 `모죽지랑가`는 그야 말로 죽지랑을 사모하는 노래인 것입니다. 하여간 화랑들은 늘 같이 생활하고 산과 들로 심신을 수련하러 다녀으니 화랑도에서 동성애적 행위와 사량은 꽤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 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공식화하였고 우리 나라 조선시대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화랑에서 남색의 행위는 부정할 수 없다고 하였답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미소년은 신라 36대왕 혜공왕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원래 공주의 몸으로 태어나야 할 것을 왕이 우겨서(?) 왕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 부터 왕자의 심성보다는 공주의 심성과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8살에 왕위에 올랐는데 늘 여자같이 행동하고 여자옷을 입고 미소년들로 구성된 근위대들과 놀아났다고 하네요. 또한 신라 원성왕 시대에는 묘정이는 미소년이 살았답니다. 이 묘정이라는 미소년의 용모가 너무나 출중하여 나라 안팎에 소문과 칭찬(칭찬은 왜?)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신라 고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으며 후에는 당의 황실에 들어가 황제의 총애를 받는 남첩이 되었다고 합니다. 거의 국제공인 미소년이었다는 말이죠.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