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후기 향리의 신분동요
- 최초 등록일
- 2007.11.03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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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후기의 향리의 신분동요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고려후기 향리의 신분 동요♣
ⅰ. 향리의 신분 상승
1)배경
2)향리층의 경제적 기반
3)경제적 기반을 이용한 신분상승
4)군공으로 인한 신분상승
5)신분상승의 사상적 기반
ⅱ.신분상승의 유형
-고려시대에 관인이 되는길
ⅲ. 향리의 계층 분화
1)사대부로의 성장
2) 잔류 향리역의 고역화
3) 사족화 동향
4)사족화하지 못한 향리세력
본문내용
♣고려후기 향리의 신분 동요♣
고려 후기에 나타난 향리의 신분 동요는 크게 두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향리의 중앙 관인으로 진출을 법제적으로 보장한 과거(科擧)서리직(胥吏職)군직(軍職)잡직(雜職)등을 통한 신분 상승의 경우이다. 즉 토착 중간 지배계층인 향리신분에서 양반 관료 신분으로의 상승을 말하는 이른바 사족화(士族化)사대부화(士大夫化)현상을 들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유력 향리층이 중앙으로 진출하거나 유향품관층(留鄕品官層) 나라에서 관품(官品)을 받은 지방의 토성층(土姓層)
으로 전이함에 따라 나타난 역(役)의 공백을 대신 담당해야 했던 잔존 향리층의 역의 고역화(苦役化)와 이를 제도적으로 편승시키는 방향에서 상대적인 자기 신분상승의 도태과정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고려 전기 이해로 계속된 정치사회적 변동과 각 지배계층간의 상호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고려 후기에 있어서 향리층의 신분상승 및 계층 분화를 살펴보자.
ⅰ. 향리의 신분 상승
1)배경
▷고려 후기는 어느 시대보다 집권 세력의 교체가 빈번한 시기였다. 의종 27년 무신의 난으로 무신 정권이 성립되어 권신(權臣)의 교체가 빈번하였고, 몽고의 침입과 원 간섭기를 겪으면서 자주적인 개혁정치의 추진과 좌절의 번복을 체험하였다. 더욱이 공민왕 이후 반원 개혁정치와 왕조의 교체를 맞이하는 등 시대적 변화가 무쌍하였다. 이러한 시대정황의 흐름은 당시대의 정치사회적 중심세력의 교체를 가져왔으며 그 상황 하에서 지방세력인 향리층의 존재는 중앙 정치세력화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인적 자원집단으로 주목되었다. 무신정권에 의해서 기존의 문벌귀족이 도태됨으로써 무신들만으로 통치체제를 구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관인층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에 향리세력은 경제적으로는 중소지주층으로 유학적 지식과 행정담당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던 만큼, 이들은 무신정권의 행정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훌륭한 인적 자원으로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향리출신의 이들은 점차 중앙에서 꾸준히 기반을 다져 나갔으며 정치지배세력으로 신진사류층으로 성장하여 갔던 것이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1994 『한국사-고려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탐구당문화사
김미경, 1982 「고려시대 향리의 지위」,『경주사학』1, 경주사학회
박경자, 1974 「고려향리 제도의 성립」, 『역사학보』, 역사학회
나각순, 1992 「고려향리의 신분적 특성과 그 변화」, 『한국사학』제45호, 한국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