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대전의 역세권에 대한 지리학적 접근을 시도한 글로, 대전 역세권의 현재 문제점과 앞으로의 해결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한 글입니다.
목차
1. 서론
1-1. 조사의 배경
1-2. 조사의 목적과 방법
2. 도심의 의미 고찰
2-1. 도심의 의미 고찰 필요성
2-2. 도심의 기능과 도심의 성격
2-3. 대전 구 도심(역세권)의 정의
3. 역세권의 역사적 변화 과정
3-1. 공간적인 변화 과정
3-2. 구도심의 인구와 산업의 변화
4. 역세권의 문제점
4-1. 중추관리기능의 쇠퇴
4-2. 주거기능의 쇠퇴
5. 대전 역세권 문제의 해결 방향
5-1. 기능 차별화
5-2. 새로운 주택유형의 개발
5-3. 새로운 주택 공급 정책 수립
6. 결론
본문내용
3-1. 공간적인 변화 과정
역세권 형성의 시작은 대전역이었다. 경부선의 역으로 1905년 1월 1일 문을 연 대전역은 대전 도시발달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역이 설치되면서 일본인들이 대전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대전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일본인들의 거류지가 서쪽으로 전개됨에 따라 역세권은 대체로 동에서 서로 확산되어 왔다. 도시가 동에서 서로 확장됨에 따라 1912년, 대전역을 건너 서쪽으로 연결되도록 목척교(폭 5.45m, 길이 70m)를 가설하였다. 이 다리는 1978년 복개되었고 홍명 상가와 중앙데파트(전 동양백화점)가 건설되었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됨에 따라 대전은 지방 행정 중심지로 부상되었다. 1932년 5월 30일 준공된 충남도청은 대전천과 유등천의 중간에 입지 한다. 공주에서 도청을 이전하기에 앞서 목척교의 확장과 대전역과 도청을 잇는 직선도로의 폭을 두 배로 확장하였다. 도청의 이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이어 1938년에는 대전지방법원, 대전지방 검찰청 등 관련 행정기관의 이전을 유발시켜 도시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2년의 전년 대비 인구증가율이 45.3%에 달한 것을 보면 충남도청 이전의 파급효과를 실감할 수 있다.
도청 이전으로 대전의 서부가 주택지로 개발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고층건물이 도청 주변에 군집하게 된다. 이러한 결과로 역-도청 축을 중심으로 은행동, 원동, 정동, 중동, 대흥동의 도심부가 형성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도심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며 1953년 휴전 이후 10여 년 동안에 복구되었다. 그 후, 1960년대를 전후로 구획정리 사업이 시행된다.
- 정하길, 대전 도시계획의 변천과 특성에 관한 연구, 1993, p.56
참고 자료
▷금강지, 충청남도, 1993
▷대전교육사
▷대전교육 통계연보
▷대전 도심지의 개발수요 전망 및 사업성 분석연구, 한남대학교 지역개발연구소, 1992. 5.
▷대전시사 제1, 2, 3권, 대전직할시, 1992
▷대전지명지, 대전직할시, 1994
▷동구 사업체기초통계조사보고서, 대전광역시 동구, 1994~1997
▷주택통계편람, 대한주택공사, 1997
▷중구 구정백서, 대전광역시 중구, 1998
▷중구 사업체기초통계조사보고서, 대전광역시 중구, 1994~1997
▷中區誌, 대전광역시 중구, 1991, 1998
▷통계연보, 대전광역시, 1970, 1980, 1988~1997
▷박경옥, 대전시 서비스기능의 공간구조에 관한 연구, 1992
▷정하길, 대전 도시계획의 변천과 특성에 관한 연구, 1993
▷주경식, `대전시의 내부구조`, 지리학연구 제 10집, 한국 지리교육학회, pp.299~330
▷최문휘, 대전직할시, 한민출판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