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의 성립과 신문왕의 전제왕권강화
- 최초 등록일
- 2006.12.10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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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문왕의 전제왕권강화를 주제로한 한국고대사 레포트
목차
1. 머리말
2. 武烈系의 권력 장악
3. 貴族 勢力의 반발
4. 神文王의 王權强化
5. 맺음말
본문내용
5. 맺음말
이제까지 중대의 성립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귀족세력의 반발을 누르고 신문왕이 추진한 왕권강화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살핀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륜계인 김춘추는 선덕, 진덕왕대에 왕권 강화 작업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갔는데 이때 김유신의 군사적 배경은 커다란 힘이 되었다. 마침내 진덕왕이 죽자 전통적 귀족 세력 및 동륜계의 견제를 극복하고 왕위를 계승한 김춘추는 한화정책을 적극 수용, 김유신 및 측근 왕자들을 중용하여 그의 세력 기반을 강화하였을 뿐 아니라 제도를 정비하여 율령체제를 공고히 하는 작업도 병행하였다. 아울러 새로운 질서 수립에 장애가 되는 귀족 세력들을 전쟁을 이용하여 제거하는 등 왕권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문무왕대에도 계속되었다.
한편 새로운 중대 왕권 성립 과정에서 배제된 귀족 세력들은 문무왕대에 모반을 꾀하는 등 반발이 심했다. 이들은 김흠돌을 중심으로 세력을 결집시켜 갔는데, 중대 왕실은 귀족 세력을 회유하기 위해 김흠돌의 딸을 태자비로 맞아들였다. 이를 계기로 김흠돌의 세력은 신장되어 그의 세력인 군관이 상대등으로 나아가기도 하였다. 이에 중대 왕실은 김유신 세력의 도움으로 반대 세력을 고구려 전역에서 소극적이었다거나 하여, 또는 패전의 책임을 지워 제거 하였다. 이 과정에서 반대 세력은 어느 정도 위축되었지만 김유신 세력은 노쇠하여 점차 김흠돌 세력과 정국의 주도권을 놓고 각축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문무왕은 나름대로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하였지만 이후의 정국 전개를 심히 우려하였던 바, 이것이 문무왕이 유조를 작성한 배경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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