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시대에는 소설을 창작하거나 읽는 것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소설을 창작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떳떳이 내세울 만한 일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작자들이 스스로를 작자로서 드러낸 경우가 거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알려져 있는 작자들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기록에 의해 밝혀진 경우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미 밝혀진 고전소설 작자들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고전소솔의 하위 장르 혹은 하위 유형에 맞추어 주요 작자를 신분 계층별, 성별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목차
1. 밝혀진 작자들
2. 비판적 지식인
3. 직업적 작자층, 그리고 몰락 양반층
4. 판소리계 소설의 작자
5. 대하소설의 작자
6. 여성작자와 공동 창작
*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시대에는 소설을 창작하거나 읽는 것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소설을 창작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떳떳이 내세울 만한 일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작자들이 스스로를 작자로서 드러낸 경우가 거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알려져 있는 작자들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기록에 의해 밝혀진 경우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미 밝혀진 고전소설 작자들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고전소솔의 하위 장르 혹은 하위 유형에 맞추어 주요 작자를 신분 계층별, 성별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또한 한문 단편 작자로서 이옥(1760~1812), 김려(1675~1728), 안석경(1718~1774) 등이 있으며, 이 밖에 「일락정기」를 지은 `만와`晩窩, 「청백운」을 지은 `초료산주인`??山主人, 「절화기담」을 지은 `석천주인`石泉主人, 「광한루기」를 지은 `수산`水山, 「쌍선기」를 지은 `한은규` 등이 있으나, 현재까지 이들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가 확보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 중에 「일락정기」를 지은 `만와`라는 이는 이이순(1754~1832)일것이라는 학설이 제기되어 있다.
이들 작자 중 김만중과 김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려고 한다.
(1) 김만중
김만중이 살았던 17세기는 문학 장르로서의 소설이 문학사의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부상하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소솔의 작가와 독자는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소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대단히 협소했다. 중국의 소설을 감상하는 독자층이 양반 사대부와 부녀자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소설에 대해 다소의 호감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으나, 대다수의 양반 사대부들은 소설을 도외시하거나 문장의 말류(末流)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17세기의 이러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김만중의 문집에 그가 창작한 소설이 어째서 실려 있지 않으며, 김만중 자신이 후대에 자신이 소설가로 기억되기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김만중의 삶의 궤적을 기록하고 있는 『서포연보(西捕年譜)』는 그의 삶이 정통 사대부로서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실천의 과정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문집에 정통 사대부의 시문들만이 실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삶 역시 환로(宦路)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온갖 분투와 고뇌의 과정으로 기록되고 이다. 그의 삶 가운데 소설 창작은 자신의 삶을 총력으로 투여하는 보람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여기(餘技)로서 자리 매김 될 뿐이었다.
참고 자료
박성모, 『한국고전문학작가론』, 소명출판, 2003
이문규, 『고전소설비평사』, 새문사, 2003
이상택 외,『 한국고전소설의세계』, 돌베개, 2005 (우리 교재)
임동철,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 연구』, 민속원, 1997
이상택 , 『한국고전소설의 이론Ⅱ』, 새문사, 2003
이혜순 외,『한국고전 여성작가 연구』, 태학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