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밤이여, 나뉘어라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06.10.17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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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상문학상 30회 수상작인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를 읽고 쓴 글입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은 아니고, 소설에 대한 분석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흔히 이 소설에 대해 말하는 `욕망`의 관점을 수용하되,
삶에서 욕망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부 견해인, 끝이 보이는 소설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긍정적인 입장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렇기에 제 글의 제목은 <삶의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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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밤이여, 나뉘어라>에는 두 가지 욕망이 있다.
그 하나는 P의 것이다. 별로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 문학 속의 수많은 천재가 갖고 있는 이상 성격도 없이, 오히려 그 인간미조차 선망의 대상이 되는, 천재를 뛰어넘는 완벽한 인간상. P다. 그에게 욕망이란 없다, 그를 위해 존재하는 이 땅 위에서는. 지상에서의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자가 품을 법한 욕망이 지상을 초월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사랑. 인류 최대의 관심사,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성역. 기껏 ‘사랑은 호르몬의 작용이며 지속 기간은 3년 정도’라는 게 첨단 현대과학의 진단이다. 그렇기에 과연, P답다. 러브피아. 가장 통속적이면서 가장 신화적인 것. 과연 P가 이루지 못할 도전이었을까. 소설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초라한 P의 모습을 보며 ‘불가능하지.’라는 뻔하고 궁색하며 인간적일 뿐인 대답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P라면, 가능했을 것 같다. 언제나와 같은 완전무결한 P였다면 말이다. P가 러브피아에 도전한 이유는, 그가 도파민이나 페닐에틸아민 따위 사랑을 만드는 호르몬의 감소에 의해, 불멸의 사랑을 유지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실패’가 P의 완전무결함을 훼손한 게 아닐까. 열정의 순수함에 금이 간 탓이 아닐까.
사랑이 애초에 인간에게 불가능한 영역이든, 내 졸렬한 생각이 옳든, P는 처음으로 패배를 맛본 셈이다. 성역은 무결한 자에게만 허락되기에 신의 영역. P의 결말은 필연이다.
또 하나의 욕망은 ‘지상을 뛰어넘으려 한 P’의 경쟁상대, ‘나’의 욕망이다. P에 비하면 ‘나’는 차라리 인간적이다. 남들이 아직 한 우물을 파는 동안 충충한 우물을 두 개나 파고도 전전긍긍하는 ‘나’.
‘나’는 목표(P를 이기는 것)를 이루기 위해 치른 노력의 무게만으로도 압도적이다. 상대가 좋지 않았을 뿐이다. ‘나’가 서 있거나 걸을 때, 뛸 때조차 늘 날아다니는 P. 결코 P를 넘어설 수 없음을 깨달은 ‘나’의 욕망은 이제, “나는 못하는 걸 네가 하고 있구나.”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P에게는 ‘나’가 목숨 걸고 해내는 지상의 어떤 일도 시시하다. P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바쳤다. 모든 것을 걸어도 않은 아깝지 않을 한 마디를 위해. “네가 구원받았다.”
그러나 과연 P의 인정이 정말 ‘나’의 구원이었을까. 그 다음에는? 지상 위의 존재에게 인정받은 다음에 ‘나’는 또 무엇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P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세상의 어떤 호사도 시덥잖을 ‘나’에게. 결국 ‘나’에게 진정한 구원은 P의 인정이 아니라 P 자체, P를 이겨야 한다는 자신만의 경쟁, 욕망 자체이다. 그것이 ‘나’를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가게 한 이유이자 힘인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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